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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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통치

☆(유)Taiwan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1895-1945: History, Culture, Memory

달고양이 Friday 2014. 9. 3. 04:15

Liao Ping-hui and David Der-Wei Wang(eds)

☆Taiwan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1895-1945: History, Culture, Memory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6)

 

- 이 연구는 기존 일본의 타이완 식민통치에 대한 인식인 근대화론을 넘는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YAO JEN-TO의 "Japanese Colonial State and Its Form of Knowledge in Taiwan"연구는 당시 일본 식민당국의 에피스테메(생물학적)를 제시하면서 이를 통해 푸코의 통치성을 개념을 도입하여 일본의 타이완 통치에서 정치적 합리성을 규명하고 있다. 이 연구는 이항대립적 인식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일본 식민지 역사 연구에서 사시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향후 식민지 연구에 참조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 연구는 서론에서 분석의 경계와 자료를 밝힘으로써 권력과 지식의 관계를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체와 권력의 관계 문제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 문제는 연구자의 향후 과제로 남아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고또신페이(後藤新平)

 

 

고또신페이는 그 경력이 다채롭다고 할 수 있다. 젊은 시절 의학을 공부했으며, 나중에 일본의 근대 도시계획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내부부 장관과 도교 시장을 지냈다. 개인적인 능력을 문제삼을 수 없으니, 그렇다 치자.

하지만 고또신페이의 사유를 분석할 필요는 있다. 고또신페이에 대한 시리즈 연구물(예, 고또신페이의 도시계획론)이 최근 일본에서 편찬되었다. 대만 식민지 통치 모델을 수립한 이로써 조선 식민정책에 그의 사유가 어느 정도 반영되었는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http://www.taiwanus.us/MediaVideoAudio/books/history/b3/02.htm

後藤新平的治台三策


一九一七年菊仙(黃旺成)在《台灣民報》撰寫一篇(後藤新平的治台三策)(一九二七‧二‧二O《台灣民報》第一四五號)時指出:


「後藤新平氏在台灣做民政長官的時候,從台灣人的性質上發現了三項的弱點,因此要好好利用這個弱點,所以制定治台的三策:


一台灣人怕死--要用高壓的手段威嚇的。
二台灣人愛錢--可以用小錢利誘的。
三台灣人重面子--可以用虛名籠絡的。」


事隔六十多年的今天,讀到這樣的論點。仍舊使我們怵目驚心,悲嘆不已。後藤新平是二十世紀初台灣總督府的民政長官,百年來台灣的現代化和他有莫大的關係。台灣的現代化都市、鐵路、電信、交通、產業一尤其是糖業」,台灣的公賣制度、警察制度,台灣的醫療、醫生,教育制度等,都在他任內奠定基礎,而這樣對台灣近百年歷史有重要影響的人,卻是台灣人最陌生的歷史人物。


五十歲以下的台灣人一談到日據時代五十年的歷史,總是一句話就完了:「日本帝國主義侵略台灣」。五十歲以上的台灣人,舉止審慎,彬彬有禮,卻被下一代痛斥為帶有「日本帝國主義的遺毒」。講日本話的台灣人上一代,和講北京話的下一代形成強烈的對比;年輕一代對上一代的思想與言行總是疏離又覺得莫名其妙,雖然他們還是享用日本的家電、服飾,唱卡拉OK,吃生魚片,看日本漫畫。


日本對台灣五十年的統治,功過如何,歷史自有定論,總不能用一句話就輕易帶過。台灣人未免太沒歷史感了,連日本帝國主義如何統治我們都一無所知。沒有理解就沒有罵人的權利。為了讓年輕一代了解日據時代外來統治者的統治手腕,我們特別選擇後藤新平作為典型,看這樣一位醫生出身的殖民地官僚如何統治台灣,以及浚來如何管理南滿鐵路。後藤新平不是年輕人應該效法的對象,因為他的所作听為一切只為了增加日本帝國主義的榮耀,而這樣的榮耀卻是建築在台灣、滿州(中國東北)人民的苦難血淚之上。但是,他的一生卻是值得年輕一代借鏡,所謂「行政官僚」的風格,所謂知識份子報國的典型,都可以從後藤新平的身上看到。他「主張一生物學原則」,調查社會與風俗民情,推進現代化建設,同時也用嚴酷的警察制度來壓制台灣人的反抗。這樣一個充滿矛盾的人物,是值得我們仔細玩味的。


當然我們描述後藤新平的一生,不止於他在台灣及滿鐵的一段歷史,更要勾勒出他的政治理念與作為政治人物的一面。縱觀他的一生,總是要搞大手筆的事業,老是被當時的世人譏笑為「吹牛大王」;而他攀附軍人,討厭政客,作事講求效率,不講人情,也是使他在政治生涯上坎坷與悲劇的一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