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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통치

[책]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 개략’을 정밀하게 읽는다

달고양이 Friday 2014. 9. 9. 22:23

 

 

인민에서 국가로 무게중심 뒤바뀐
‘후쿠자와’ 문명론의 함정 지적하며
근대성에 갇힌 마루야마의 오독 비판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 개략’을 정밀하게 읽는다〉
고야스 노부쿠니 지음·김석근 옮김/역사비평사·2만원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사진)는 일본 메이지 시대(1868~1911)를 대표하는 계몽사상가다. 하급 무사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이 서양 문물에 눈떠 메이지 시대 내내 일본 근대화의 길을 최전방에서 밝히고 이끌었다. 그런 이력 때문에 그는 ‘메이지 계몽사상 자체의 체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동시에 그는 ‘탈아입구론’의 주창자로도 알려져 있다. ‘아시아에서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가자’라는 주장으로 일본의 제국주의화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논란 속에 있는 ‘문제적 인물’이다.

후쿠자와의 사상활동은 〈서양사정〉 〈학문을 권함〉 〈문명론의 개략〉과 같은 여러 권의 저작으로 남았는데, 그 가운데 〈문명론의 개략〉은 그의 계몽사상이 집약된 대표 저작이자 일본 안에서 ‘고전 중의 고전’으로 통하는 작품이다. 일본 사상사학자 고야스 노부쿠니(1933~)가 쓴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의 개략’을 정밀하게 읽는다〉는 이 사상사의 고전을 비판적으로 독해하는 책이다.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고야스의 책은 한 세대 앞의 일본 사상계 거두 마루야마 마사오(1914~1996)가 쓴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를 염두에 두고 쓴 책이다. 따라서 고야스가 설정한 대결 전선은 이중적이다. 하나가 후쿠자와의 〈문명론의 개략〉 자체를 겨냥한다면, 다른 하나는 마루야마의 후쿠자와론을 대상으로 삼는다.

몇 달 전 우리말로도 옮겨져 출간된 마루야마의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는 후쿠자와 옹호론을 적극적으로 펴는 책이다. 마루야마는 이 책에서 후쿠자와의 비판성·개혁성·진보성에 주목하고 그 사상의 독창성을 특별히 강조한다. 일본의 많은 진보 지식인들이 후쿠자와를 비판한다는 점을 알면서 일부러 그의 긍정적 측면을 알리려는 의지가 배어 있는 것이 마루야마의 후쿠자와론이다. 이런 옹호론에 대해 고야스는 마루야마가 후쿠자와를 변호하는 데 급급할뿐더러, 후쿠자와의 사상 그 자체를 정밀하게 읽기보다는 자신의 사상으로 후쿠자와를 덮어버렸다고 비판한다.

요컨대, 마루야마의 〈문명론의 개략〉 읽기는 ‘근대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는 게 고야스의 지적이다. 마루야마는 일본 사회가 지닌 문제를 ‘근대적 정신의 결여 또는 미완숙’에서 찾고 있는데, 후쿠자와를 통해 바로 그런 ‘근대성 결여’ 문제를 상기시키고자 한다. 고야스는 이런 태도에 비판적이다. 마루야마 식의 후쿠자와 독해로는 후쿠자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의 문제도 극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야스는 자신의 책 곳곳에서 마루야마의 후쿠자와 이해 방식을 신랄하게 공격한다.

이렇게 보면 고야스의 후쿠자와 읽기가 시종 매우 비판적일 것 같지만, 책은 의외로 후쿠자와에 대한 찬탄에 가까운 평가로 시작한다. 고야스의 〈문명론의 개략〉 읽기 전략은 후쿠자와의 진보성과 개혁성을 먼저 분석한 뒤 그것의 한계를 짚어 보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고야스는 후쿠자와가 〈문명론의 개략〉을 쓸 때의 시점(1875년)에 주목한다.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고 8년이 지난 그 시점은 일본의 근대화가 어느 방향으로 이루어질지 아직 정해지지 않은 매우 유동적인 때였다. 그런 시기에 후쿠자와는 자신의 ‘문명론’을 통해 근대화의 방향을 제시하려고 했다. 그런 저술 활동은 그 시기에 떠돌던 여러 근대화 담론과 벌인 치열한 사상투쟁이기도 했다.

후쿠자와가 대항했던 담론 가운데 가장 유력했던 것으로 지은이가 지목하는 것이 ‘국체론’이다. ‘만세일계의 황통’을 국체로 삼는다는 당시의 국체론은 천황 중심으로 인민을 통합함으로써, 다시 말해 인민을 천황의 신민으로 재편함으로써 ‘천황제 국가’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주장이었다. 이 ‘천황 중심의 국체론’에 대항해 후쿠자와는 인민을 중심에 둔 국체론을 제시한다. 국가의 중심은 인민이라는 것이다. 후쿠자와는 문명화를 ‘인민의 지혜와 덕성이 드높아진 상태’라고 이야기하면서, 인민이 그런 상태에 이를 수 있도록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후쿠자와 유키치 /〈한겨레〉자료사진

이때 후쿠자와가 문명화의 모델로 가리키는 것이 서구의 선진국가다. 그 국가들이 문명화의 종착점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문명화의 본보기로서 뒤따라야 할 대상이라고 보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문명화 전략의 실천 방안을 제시할 때 나타난다. 후쿠자와는 문명화의 최종 목적이 인민의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이라는 것을 말하면서도 그것을 이루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근대 주권국가의 건설임을 더 힘주어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문명론의 개략〉의 후반부에 가서는 주권국가의 건설이 목표가 되고, 문명화 자체는 수단으로 바뀌게 된다. 바로 그렇게 선후가 뒤바뀌면서 후쿠자와는 인민 중심에서 국가 중심으로 어느덧 기울어진다. 고야스는 〈문명론의 개략〉에 담긴 이런 문제가 이후 ‘탈아입구론’으로 드러나게 된다고 진단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