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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포스터, 푸꼬, 마르크시즘, 역사 : 생산양식 대 정보양식

달고양이 Friday 2014. 10. 10. 00:51

 

 

 

마르크스주의의 생산양식과 푸코의 정보양식을 함께 논의한 마크 포스터는 19세기 사회를 '노동사회'라고, 후기 자본주의사회를 '정보사회'라고 부를 때, 마르크스의 생산과 노동에 대한 이론은 오늘날 유효성을 상실한 반면, 푸코가 제기한 '권력의 기술'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정당성을 얻고 있음을 설명한다."(오생근, 『미셸 푸코와 현대성』, p.47)

 

"푸코는 마르크스주의가 불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주의의 개념적 무기고는 사회적 장의 여러 상이한 지점에서 나타나는 지배형식들을 이해하기 위해 생산양식을 넘어서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게다가 이러한 지배양식들을 개념적으로 모든 생산관계들과 다르게 간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죄수와 범죄자들은 주변적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들의 체험에 대한 분석은 의미 있는 억압 메커니즘들을 폭로하지 못하며, 사회질서의 전복에 기여하는 과격성의 원천을 이해하지 못한다. 반면에 탈 전체화적인 가정들을 가진 푸코에게는, 지배와 권력의 체계들은 수많은 장소에 각기 독특한 방식으로 존재하며, 그 중의 어떤 체계들은 자본주의 지배에 대한 분석만큼이나 최소한 현대사회의 억압적 성격을 폭로해준다."(마크 포스터, 『푸꼬, 마르크시즘, 역사』, p.124)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마르크스에 대한 소극적 평가와 달리, 마르크스를 물리학에서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에 비유하고,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마르크스의 역사인식을 외면하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마르크스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푸코는 "권력의 그물"이라는 논문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권력을 억압과 금지의 메커니즘으로 이해하지 않고, 생산과 긍정의 메커니즘으로 통찰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설명을 오생근의 『미셸 푸코와 현대성』을 인용한다.

 

그는 이 글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2권에서 마르크스는 하나의 권력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권력이 존재하고, 어려 권력은 작업장, 군대, 흑인노예들을 고용하는 대지주의 저택 등에서 지배와 복종의 형태로 가동하고 있으면서 이질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것들의 역사적이고 지리적인 특성을 별도로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기 이유는 "사회에서 존재하는 법률적 유형의 권력에 비해, 고용주가 공장에서 행사하는 사실상의 권력은 특수성과 독립적 자율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마르크스는 이러한 권력들이 군주권 같은 중앙의 권력이 먼저 확립된 후에 파생된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고, "대지주, 노예제도, 작업장, 군대와 같은 소규모 권력의영역들이 먼저 존재한 후에, 거대한 국가기구들이 점차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셋째, 이처럼 특수하고 지역적인 권력들이 계속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은 그것을 해서는 안된다"는 식의 금지의 기능 때문이 아니라 생산자들의 능률과 효과적인 생산을 중요시한 기능 때문임을 마르크스는 통찰한다. "마르크스는 군대와 작업장에서의 규율 문제를 탁월하게 분석한다. 물론 그의 분석은 내가 군대에서의 규율을 분석하는 작업과는 다르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푸코는 이렇게 규율 문제에 대해 마르크스의 분석을 탁월한 것으로 평가한다. 넷째, 중요한 것은 권력의 메커니즘을 끊임없이 발전하고, 완성하는 방법이자 기술로 이해하는 일인데, 권력을 기술로 이해하는 이러한 관점은 <자본론>2권에서 작업장과 공장에서 행사되는 권력의 기술에 대한 역사를 분석한 부분에서 잘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푸코는 마르크스의 지침에 따라, 성에 관한 문제에서 권력을 법의 관점이 아닌 기술의 관점에서 고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푸코)가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를 구별해야 한다고 말했듯이, 그의 비판대상은 마르크스주의였지 <자본론>의 저자인 마르크스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권력의 기술과 <자본론>의 관계를 논의한 네 번째 설명에서 보이는 것처럼, "성에 관한 문제에서 권력을 법의 관점이 아닌 기술의 관점에서 고찰"함으로써 '생명관리권력'의 개념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을 무엇보다 중요한 성과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사실 마르크스주의 담론성의 창시자인 저자를 평가하는 문제와 마르크스주의의 권력화 현상을 비판하는 문제는 다르다. 이런 점에서 권력화된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라는 푸코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우리의 앞 세대나 다름 세대에도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말이겠지만, 우리 세대의 특징은 정치적 상상력의 결핍인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예를 들면, 18세기와 19세기 인간들은 인간사회의 미래를 꿈꾸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의 상상력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 즉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회와 인간의 관계는 무엇인가? 같은 물음으로 가득했던 것이다.(오생근, 『미셸 푸코와 현대성』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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