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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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합리성

달고양이 Friday 2014. 10. 12. 23:07

 

“합리화란 인간 행동의 총체를 프로그램화하고 정향시키는 것입니다. 인간 행동이나 정치 관계만큼이나 제도들에도 어떤 논리가 있습니다. 가장 폭력적인 형식들조차도 어떤 합리성이 있습니다. 폭력 속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합리성입니다. 물론, 폭력은 그 자체 끔찍한 것이지요. 그러나 폭력은 가장 깊은 곳에 자신의 닻을 발견하고, 우리를 이용하는 합리성의 형식에서 자신의 영속성을 끌어냅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이성의 세계에 살고 있다면, 폭력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했었지요. 그건 완전히 거짓입니다. 폭력과 합리성 사이에는 어떤 양립 불가능성도 없습니다. 내 문제는 이성의 과정을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폭력과 양립 가능한 이러한 합리성의 본성을 결정하는 데 있습니다. 제가 싸우는 것은 통상 이성이 아닙니다. 이성과는 싸울 수가 없습니다.” Foucault, étudie la raison d’État, Dits et Écrits Ⅱ, p. 803 ; 이정희, "미셸 푸코의 통치성의 계보학",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시대와 철학> 22권 1호. 2011, 59 재인용).

 


 “차별 기술이 정신병원에 있었고, 규율 기술이 처벌 체계에 있었고, 생명 정치가 의료 제도에 있었던 것처럼, 국가에 있을 통치성 같은 것을 우리는 말할 수 있을까?” 푸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가 저항해야 할 대상이 단지 정신병원, 감옥, 병원, 국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들을 관통하며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통치 기술, 통치 실천의 합리성 절차들에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저항 지점을 폭력과 합리성의 대립에 두는 것이 아니라, 통치 합리성의 절차 안에서 발견하는 것이 문제이다. 따라서 우선 주의할 점은 어떤 통치 유형을 그 입구부터 미리 옳고 그름의 잣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 통치 유형에서 <자유>의 양이 예전보다 증가했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초월적인 자유를 논하기 전에 언제나 국부적인 양상으로 나타나는 자유와 제한 간의 내재적인 동거에 대한 앎이 우선이다(이정희, "미셸 푸코의 통치성의 계보학",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시대와 철학> 22권 1호. 2011, 61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