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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 근대개념의 새로운 이해를 위한 단상 본문

근대화

근대 ― 근대개념의 새로운 이해를 위한 단상

달고양이 Friday 2014. 10. 18. 21:29

 

개념사란 무엇인가

 

1. 근대 ― 근대개념의 새로운 이해를 위한 단상
(출처 : www.krpia.co.kr )

 

‘모던’, 또는 ‘모더니티’의 번역어 ‘근대’라는 말 속에는 규범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이 섞여 있다. 이중의 의미에서 그러하다. 한편으로 이 개념은 서구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을 보편사적 맥락에서 규범화하고, 다른 한편 우리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을 보편사적 맥락에서 규범적으로 해석하는 데 사용되어왔다. 이런 사정은 무엇보다 오늘날까지도 우리 지식계를 지배하고 있는 근대화론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근대화론은 계몽주의에서 유래하는 진보낙관주의와 사회진화론의 20세기적 변형물이며, 근대화론이 말하는 ‘근대화’는 19세기 유럽 제국주의의 ‘문명화’, ‘서구화’ 슬로건이 근대화된 것이다. 근대화론은 유럽에서 아프리카에 이르는 모든 사회의 변화들을 ‘전통’과 ‘근대’라는 이항 대립적 범주로 구성되는 동일한 사회 진화 모델에 따라 측정한다. 이런 사회 진화 모델에서 벗어나는 사례들은 이른바 ‘전근대’ 혹은 ‘반근대’, ‘후진’ 혹은 ‘저개발’, ‘특수’ 혹은 ‘일탈’이라는 용어로 묘사된다. 여기에는 하나의 ‘정상적’ 근대만이 전제되며, 경제생활에서 정신문화에 이르는 온갖 사회문화적 구성물로 빽빽하게 채워진 카탈로그가 ‘정상’의 지표로 제시된다. 물론 이 지표 목록은 서구중심주의, 궁극적으로 미국중심주의의 관점에서 자의적ㆍ선별적으로 작성된 것이다.1)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우리 전통을 서유럽 전통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이 난센스라는 것쯤은 초등학생들의 상식인데도, 그곳의 근대성을 잣대로 우리의 근대성을 재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도 그곳 사회처럼 ‘정상적’ 근대로 진입할 수 있다고 강변하는 것을 난센스나 궤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는 점이다. 아마도 근대화론이 주장하는 ‘정상적’ 근대 및 근대성의 특정한 지표들, 예를 들어 국민국가, 산업자본주의와 시장경제, 도시화, 관료제, 민주주의, 그리고 합리성 같은 것들이 우리를 세뇌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간 우리 학계에는 ‘우리에게 근대란 무엇이었으며, 또한 무엇인가’를 해명하려는 노력들이 있었다. 이 노력들의 근저에는 근대화론을 뛰어넘어 한국적 근대, 더 나아가 동아시아적 근대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여기에는 이른바 ‘근대주의’를 극복하고 ‘탈근대주의’적 시각에서 우리 근현대사를 다시 읽으려는 시도들도 포함된다. 그러나 최근 뉴라이트 대안 교과서에서 잘 드러나듯이, 근대 민족주의 역사학을 비판하는 ‘탈근대주의’적 시각은 결국 ‘탈근대주의적 근대화론’으로 귀결되기도 했다. 이 기괴한 근대화론적 시각은 “인간의 삶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만들기에 적합한, 지금까지 알려진 한 가장 적합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찬양, 남북 분단을 ‘문명’과 ‘야만’의 대립 구도 속에서 파악하는 역사인식에서 절정에 달한다.2)
근대화론이 각인시킨 근대 개념의 의미론을 넘어서는 것은 이처럼 어려운 일이다. 근대라는 한 역사적 시대가 갖는 내용적ㆍ물적 특징, 즉 사후적事後的 관점에서 구성된 사회문화적 구성물의 특징에 의거해 근대 개념을 이해하려 하는 한, 우리의 근대적 정체성 찾기는 근대화론의 인식 틀을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 글은 근대 개념을 새롭게 이해하고자 하는 예비적 시도이다. 본격적인 연구는 향후의 과제이다. 개념은 역사적인 것이다. 개념 속에는 역사 행위자들의 경험 내용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집약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 한국인이 근대 개념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살펴보면, 무엇보다 우리가 근대 세계를 실제로 어떻게 경험했으며 어떤 기대 속에서 어떻게 인식했는지 알 수 있다.
근대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경험과 서구인들의 역사적 경험이 다르듯이, 우리와 서양의 근대 개념은 다르다. 그러므로 우리의 근대적 정체성 찾기는 우선적으로 우리의 근대 개념과 서양의 근대 개념 사이의 차이를 명료화시키려는 시도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근대’와 ‘모던’

구한말 ‘문명개화’의 시대로부터 1960/70년대의 ‘근대화’ 시대를 거쳐 오늘날 ‘세계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근대’라는 용어를 어떻게 사용해왔는가? 다시 말해 ‘근대’라는 용어를 통해 무엇을 표현해왔는가? 우선 이런 질문이 필요할 것이다. 이 용어가 표현하는 개념적 뜻은 물론이고 단어적인 뜻 자체가 추상적이고 모호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근대’라는 말은 ‘현대’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또한 ‘근대’는 ‘모던’과 무엇이 다른가, 더 나아가 ‘모던’은 무엇을 지칭하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근대’라는 말이 모호하고 난해한 것은, 우선 서양어 ‘모던’의 뜻이 다의적多義的이기 때문이다. ‘모던’이라는 단어는 기본적으로 ‘현재의’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로 표현되는 의미의 장은 훨씬 다양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비교문학가이자 문예사가인 굼브레히트는 ‘모던’이라는 용어를 통해 개념화될 수 있는 것들을 이 용어에 내포된 세 가지 의미 유형을 가지고 구분했다. 먼저 ‘현 교황’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전의’라는 뜻과 반대되는 ‘현재의’라는 의미 속에서 ‘모던’은 그때그때 현재마다 바뀔 수 있는 제도를 대표하는 개념ㆍ대상ㆍ사람을 지칭한다. 둘째, ‘낡은’과 반대되는 ‘새로운’의 의미 속에서 ‘모던’은 한 시대로 체험된 현재를 지칭한다. 이때 ‘모던’은 ‘과거 시대와 구별되는 새로운 시대’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영원한’과 반대되는 ‘일시적인’이라는 의미 속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특정 시기의 현재가 ‘미래에 다가올 현재의 과거’로서 생각된다. 이때의 ‘모던’은 ‘미래를 준비하는 이행기’의 의미를 지닌다. 물론 이런 구분은 단지 ‘모던’이라는 말을 통해 개념화된 복잡한 의미의 층위들을 분석하기 위한 이념형적 구분에 불과하다.3)
그러나 ‘근대’라는 말의 모호함은 무엇보다도 ‘모던’이 ‘근대’로 번역되면서 생긴 문제 때문이다. 19세기에 일본인들은 서양어를 번역하면서 전통적 일상어 대신 어려운 한자를 사용함으로써 번역된 단어가 내용이 뭔지는 몰라도 무언가 중요한 내용이 있을 것 같이 보이도록 만들었다. 이후 그 번역어들은 우선 지식인층 사이에서 유행을 타기 시작했고, 결국 사회 전체가 정확한 뜻도 모르면서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야나부 아키라柳父章는 이런 현상을 이른바 ‘카세트(작은 보석함) 효과’라고 불렀다.4)
‘근대’ 역시 번역을 통해 출현한 여타의 신조어들처럼 전형적인 ‘카세트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 하나를 인용해보자.

한국의 ‘근대’ 혹은 ‘근대성’에 대한 폭발적 관심은 익숙했던 것과 단절된 채 기약 없는 미래를 향해 내던져진 우리가 겪는 정체성 위기에서 나오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근대적인 것들이 사라지려 할 때 ‘근대’를 기억하려 한다는 것(…).5)

‘모던’의 단어적 의미를 따른다면 이 말은 부정확하다. 사라지는 현재를 기억한다? 아니면 사라지는 새로운 것, 혹은 새로운 시대를 기억한다? ‘근대’라는 말의 부정확한 사용으로 인해, 이 말을 통해 개념화하려는 대상과 개념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워지고 혼란이 생긴다. 그러나 여기에 꼭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개념이 단어적 의미와 반드시 일치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경우에 따라서는 개념이 단어의 원래적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근대’라는 기호로 표현한 것들은 몹시 난해하긴 하지만, 동시에 서양의 ‘모던’이라는 기호가 포착하지 못하는 어떤 경험들을 부각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모던’과 ‘근대’는 부분적으로 일치하기도 하지만, 결코 같은 개념이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양자의 차이는 무엇보다 사회적인, 그리고 때로는 정치적인 함의와 기능에서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야나부 아키라에 의하면, 일본에서 근대 개념은 대개 시대를 지칭하기보다는 서양문명에 대한 특정한 태도를 표현하기 위해 쓰였다. 이 개념은 정확한 내용을 결여한 채 ‘근대인’의 경우처럼 수식어로 사용되면서 때로는 젊은 지식ㆍ문화예술인 집단이 발산하는 ‘분위기’나 ‘매력’을 표현했으며, 때로는 ‘초극’되어야 할 부정적 가치로서, 때로는 긍정적 가치로서 강조되었다.6) 이렇듯 일본의 근대 개념에는―좋은 혹은 나쁜―‘서양문명=근대’라는 공간적이고 가치 지향적인 함의가 강하다.
이런 특징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근대 개념의 특징은 1920/30년대 경성에 출현한 ‘모던 뽀이’, ‘모던 껄’의 서구적 삶의 방식과 그에 대한 비판 담론을 통해 상징화된다. 당시 논객들은 이들을 “근대아” 혹은 “시체아時體兒”라고 부르면서 ‘근대’를 현재의 “양풍”, 즉 서구식 유행과 동일시했다. 그리고 이런 서구식 유행을 세기말적 퇴폐 문화로 채색된 서구의 물질 문화로 규정했다.7) 물론 이 공간적이고 가치 지향적인 근대 개념 속에는 시간 지향적인 서양의 ‘모던’ 개념과 공통되는 의미들도 담겨 있긴 하다. 서구의 ‘모던’ 개념 속에는 ‘유행’의 의미도 담겨 있다.8) 이는 굼브레히트가 세 번째로 지적한 ‘순간적’이라는 의미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부단히 변화하는 이행기로서의 현재’ 혹은 ‘미래의 현재를 만드는 순간으로서의 현재’라는 의미는 특히 유광렬의 「모던이란 무엇이냐」에서 두드러진다. 그는 서구적 유행을 구현하는 “형식적 근대아녀”들이 아니라, “최근대적 의식”, “더 나간 의식”을 가지고 “시대에 선행하는” 사람들을 진정한 “근대아”, “근대녀”라 불러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의 진술 속에서 우리는 진보와 미래를 위한 프로그램으로서의 근대 개념을 읽을 수 있다.

 

 


●[그림] 〈모던보이 제군!〉과〈모던걸의 장신운동〉
『신문춘추』 1927년 6월호

 

그러나 우리의 근대 개념에 내포된 이런 시간적 의미는 결코 전면에 부각된 적이 없다. 오늘날까지 우리의 근대 개념은 공간적이고 가치 지향적인 의미 체계 속에서 한편으로 ‘동양=비산업적=농촌의=저개발=나쁜 것’과 대비된 ‘서양=산업화=도시화=발전된=훌륭한 것’이라는 이데올로기 축과, 다른 한편 ‘민족적=전통적=주체적=소중한=좋은 것’과 대비된 ‘서양적=현대적=비주체적=천박한 것=나쁜 것’이라는 이데올로기 축의 대립 속에서 진자운동을 하는 정치적 기호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9) 그러나 우리의 근대 개념은 우리의 현재를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의 축 위에서 하나의 ‘역사적 시대’로 보고 그 시대적 특징을 역사적으로 묘사하고 분석하기에는 공허해 보인다. “현대의 부재”(김진송)나 “부재하는 현재”(김경일)10)와 같은 우리 근대에 대한 난해한―때로는 서양 근대 개념에 대한 오해에 근거한―진단들은 이런 의심을 강화한다. 그러나 아직 근대 개념에 대한 체계적 비교사 연구가 없는 상황에서 속단은 금물이다. 체계적인 비교사 연구는 무엇보다 서양의 근대 개념과 한국(동양)의 근대 개념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는 시도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역사상 최초의 새로운 시대

그렇다면 서양의 근대 개념은 어느 지점에서 우리 근대 개념과 결정적인 차이가 나는가? 용어사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미 5세기에는 현재를 뜻하는 modernus가, 17세기에는 modernity가, 그리고 18세기에는 modernize, modernizer, modernization과 같은 단어들이 출현했다. 물론 이 단어들을 오늘날의 의미를 지닌 개념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현재’ 속에 이전과 구별되는 시간적 의미가 점점 증대했으며, 그에 따라 ‘현재’가 점차 역사적 질을 부여받았다는 점이다.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개념사적 논의를 해보자.
서양의 근대 개념이 지닌 독특성은 코젤렉에 의해 규명되었다. 그는 근대화론자들과 달리, 근대 및 근대성의 독특함을 전통과 구별되는 새로운 내용적ㆍ물적 특징들에서 찾지 않고 서양인들의 새로운 시간 경험에서 찾았으며, 그들과는 달리 사후적 관점이 아닌 당대인의 관점에서 이들의 역사적 시간의 새로운 경험의 출현 및 변화 과정을 분석했다. 우리는 앞장에서 그가 한 발견의 중요한 골자를 이미 살펴보았다. 그러나 여기서 좀 더 자세히 그가 발견한 서양의 근대 개념이 지니는 독특성을 상기해보도록 하겠다. 그는 단순히 방법론적으로 ‘근대’란 용어의 의미 변화를 추적하는 어의론적 분석뿐만 아니라, 명칭론적 관점에서 이 용어의 변화와 깊은 관련을 맺은 채 일정한 의미론적 장을 형성했던 ‘역사’, ‘진보’, ‘혁명’, ‘위기’, ‘해방’, ‘우연’ 등을 모두 분석하면서 근대의 의미론을 추적했다.
위의 용어들은 스스로 그 속에 역동적 의미가 증가되어가는 운동 개념으로 변화하면서 ‘근대’를 이전의 ‘현재’의 의미에서 새로운 역사적 시간, 즉 ‘역사’ 자체의 시간을 표현하는 운동 개념으로 변모시켰다. 이를 통해 근대 개념은 역사 진행의 역동성과 일회성, 변화와 단절의 가속화로 요약할 수 있는 서양인들의 근대에 대한 독특한 역사적 경험을 표현했다. 구체적으로 근대 개념 속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들어가게 되었다.

• 역사는 시간의 동질적인 연속 속에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고유의 지속 리듬을 가진 채 역사적 사건이나 흐름에 내재하고 있다는 역사 발전 의식.
• 대항해 시대 이후 타 문명권의 다양한 역사들이 세계사적 차원의 비교를 통해 통시적으로 정렬되면서 나타난 역사 진보 의식과, 이를 통해 등장한 ‘-이전’과 ‘-이후’, ‘-보다 (혹은 너무) 이른’과 ‘보다 (혹은 너무) 늦은’ 같은 시간적 비교 의식, 또 ‘선진’과 ‘후진’이라는 공간적 비교 의식, 그리고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성’이라는 의식.
• 시간의 진보, 시대적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역사인식, 즉 시간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오늘의 역사가 변하며, 또한 과거에서 멀어지면서 과거의 역사도 변한다, 즉 역사의 진리는 그때그때 달라진다는 역사적 상대주의.
• 이와 관련하여,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시대를 ‘역사의 새로운 시대’로 특징지으려는 의식.
• 또한 자신의 시대가 지닌 새로운 특징을 부각시키기 위해 ‘전통’을 새롭게 발명하려는 지속적 관행.11)
• 역사 변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져 매번 역사적으로 유래 없는 새로운 시대를 경험하고 있고, 이 경험은 역사가 진행되는 한 끝이 없으리라는 과도기 의식.

이런 근대 개념은 단순히 서양인들의 위와 같은 새로운 역사의식을 반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의식을 이데올로기화하고 그들의 행위를 정치화시키면서 근대 서양의 역동적 변화를 추동했다. 이에 덧붙여, 코젤렉은 지적하지 않았지만, 근대 개념이 서양인들의 역사적 과도기 의식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면서 근대 개념 스스로도 이데올로기화ㆍ정치화되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종래의 경험과 다가오는 것에 대한 기대 사이에 점점 더 큰 틈이 벌어지고, 과거와 미래 사이의 차이가 커지며, 따라서 체험된 시대가 단절과 이행기로 경험되고, 그 속에서 항상 새롭고 기대하지 않은 것이 나타났다. 그 속에서 ‘시대정신’과 같이 시대에 역사적 질을 부여했던 새로운 정치 유행어가 만들어졌다. 또한 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놓고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 사이에 정치적 대립과 갈등이 두드러졌다. 그 가운데 ‘역사 일반’, ‘발전’, ‘진보’와 같은 개념들이 각 정파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표어가 되면서 이데올로기화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각 정파 및 사회집단들이 지향하는 미래 유토피아에 따라 정의된 여러 개의 ‘근대’ 및 ‘근대성’이 출현했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적 ‘근대’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대안적 근대’와 나치즘의 ‘유기적 근대’ 같은 각각의 정치적 유토피아주의에 따른 이데올로기적ㆍ규범적 근대 개념들이 출현했다.12)
이처럼 그 전에는 결코 없었던 초유의 역사적 경험―즉 스스로 시간을 통해 구현되는 근대적 ‘역사’의 경험―이 서양인의 근대 경험의 핵심을 형성하며, 따라서 서양의 근대 개념의 독특성을 형성한다. 이 점을 다시 우리의 근대 개념과 비교하면서 그 의의를 풀어보자. 서양의 근대 개념에는 무엇보다 서양인들의 새로운 역사적 시간 경험에서 비롯된 ‘근대’라는 시대 자체의 역동성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근대가 ‘새로운 시대’인 것은 근대가 성취한 문명적 내용 때문이 아니라, ‘시대 스스로 끊임없이 새롭게 변화하는 과도기’이기 때문에 과거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대’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포함한 동양의 근대 개념에서는 서양문명과의 조우로 인한 정치ㆍ사회ㆍ경제ㆍ문화적 변화의 내용이 갖는 새로움이라는 함의가 강조된 반면, 서양의 근대 개념에서는 무엇보다―사후적 관점에서 회고한 것이 아니라―당대인들이 경험한 ‘시대 자체의 완전한 새로움’이라는 함의가 강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코젤렉이 강조하다시피, 근대, 즉 ‘새로운 시대’가 새로운 것은 바로 ‘새로운 시대의 질적인 새로움’이라는 ‘시대’ 자체에 대한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었기 때문이다.13)
여기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부연하도록 하자. 방금 말한 ‘시대 자체의 완전한 새로움’은 단순한 연대기적 의미의 ‘새로운 시대’라는 의미를 뛰어넘는다. 시대 개념으로서의 ‘근대’에는 이중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는 단순히 연대기적으로 새로 추가된 시간을 의미하는 ‘새로운 역사적 시기(period)’라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이전에는 없던 ‘신기원적 시대(epoch)’의 의미이다. 코젤렉이 강조한 것은 순수한 역사적 시간의 발견 과정 속에서, 처음에는 단순히 연대기적으로 새로 추가되었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시기’를 뜻했던 ‘근대’가 마침내 후자의 의미로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인들에 의해 ‘고대-중세-근세’로 번역된 ‘모범적인 고대’와 ‘암흑의 중세’라는 르네상스적 토포스를 토대로 한 17세기 첼라리우스(Cellarius)의 ‘고대사-중세사-근대사’라는 3분법적 시대구분 속에서 쓰이는 ‘근대’는 전형적으로 전자의 의미를 지닌다. 이때 ‘근대’는 시간적 규정이 아니며, 사후적 관점에서 내용적 규정에 의해 ‘새로움’의 의미를 부과한 것이다. 여기에는 ‘현대성’이나 ‘낡음’ 같은 기준을 가지고 행해지는 ‘시대’ 자체에 대한 특별한 역사적 의미 부여가 빠져 있다. 이때 ‘시대’란 단지 역사 서술을 구성하는 가치중립적 기본 형식에 불과한 것이다.
코젤렉이 강조했다시피, 16세기 이후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었던 “새로운 역사”, “더욱 새로운 역사”, “최신의 역사”, “새로운 시대”, “더욱 새로운 시대”, “최신의 시대” 등 ‘새로운’이라는 형용사로 수식되는 추상적 표현들에 담긴 ‘근대’는 처음에는 새로운 ‘시기’를 의미했다.
이 표현들에 담긴 ‘새로운 시대’는 한편으로 이미 중세 때부터 사용된 ‘modernus(현재의)’라는 의미의 연장선상에서 쓰였다. 즉 단순하게 그때그때의 ‘현재’가 새롭다는, 다시 말해 얼마나 새롭건 상관없이 이전 시대에 비해 오늘날의 시대가 새롭다는 뜻으로 쓰였다. 그런 의미의 ‘새로운 시대’는 아직 완벽한 시대 개념이라 할 수 없다.14) 그러나 다른 한편 ‘새로운 시대’는―특히 18세기 계몽사상의 시대에 들어―이전 시대와는 완전히 다르고 훨씬 개선되었다는 의미에서 하나의 시대 의식적 의미를 지닌 시대 개념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때그때 현재마다 새로운 역사가 계속 쓰이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라는 연대기적 추가의 의미가 혼재되어 있었다. ‘새로운 시대’는 단지 ‘중세’와의 차이를 강조하기 위해 시간이 흐른 뒤 사후적 관점에서 규정된 역사 서술적 기간 개념에 불과했다. 아직 ‘시대 자체가 갖는 새로움’, 즉 이전에는 없었던 완전한 새로움에 대한 의식은 전면에 부각되지 않았다. 이는 계몽주의 시대까지도 서양인들이 전통적인 정적 시간관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 언제부터 ‘새로운 시대’라는 말이 ‘시대 자체의 새로움’이라는 의미로―이미 그런 의미를 18세기 중엽부터 선취했던 일부 지식인층을 제외하면―일반인 사이에서 대중화되었는가? 다시 말해 언제부터 근대가 단순히 ‘중세’와 구별되는 새로운 ‘시기’가 아니라 그 자체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대중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는가? 코젤렉에 의하면, 1800년을 전후한 십 년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무엇보다 프랑스 대혁명의 경험을 강조한다. 그는 그 지표로서, 혁명 직전인 1770년대에 출현한 ‘최신의 시대’라는 시대구분 개념이 혁명이 발발한 이후 유행어가 되어 급속히 확산되었음을 지적한다. ‘새로운 시대’를 전제로 한 ‘최신의 시대’ 개념은 프랑스 대혁명의 경험을 통해 실제적으로 정치적ㆍ사회적 추진력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는 당대인들의 의식 속에서 ‘새로운 시대’가 이제 스스로 ‘최신의 시대’를 낳으면서,―이전보다 새로운 시대라는 의미에서 행해진―연대기적 추가라는 전통적 언어도식을 넘어서 최종적으로 역사적 질을 획득했음을 보여준다.15)


근대개념의 문제

서양의 근대 개념에 내포된 가장 큰 문제는 그 의미론적 함의가 ‘역사상 최초의 새로운 시대’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근대가 실제로 얼마나 새로운가를 내용적으로 밝힐 수 있는 언어적 도구로서 부적절하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이 개념은 순전한 시간적 형식성을 전면에 부각시키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과도기에 살고 있다는 의식을 표현하는 데 그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 개념은 내용적으로 지극히 모호하다. 이 속에는 각자의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입장에 따라, 혹은 역사적 시점에 따라 자의적으로 정의된 수많은 사회문화적 내용물들의 목록이―근대화론의 근대 개념은 그 한 사례이다―들어찰 수 있으며, 그 시작 시점과 특징 또한 각각의 입장에 따라 상이하게 해석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근대 개념이 매번 새롭게 변화하는 영원한 과도기를 의미하는 한 그 구체적 적용이 어렵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현재 근대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탈근대에 살고 있는가? 독일의 철학자 벨쉬(W. Welsch)에 의하면 우리는 ‘탈근대적 근대’에 살고 있다.16) 이런 근대는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코젤렉에 의하면 변화가 경험되는 한 근대는 계속된다. ‘근대의 종말’과 같은 자극적인 표어나 포스트모더니즘처럼 온갖 종류의 “탈(post)-을 정의하려는 시도”들은 오히려 근대의 전형적 특징인 변화의 ‘가속화’를 보여주는 지표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17) 코젤렉은 이 두 가지 이유로 인해 서양의 근대 개념이 이미 아나키 상태에 빠져 있음을 지적한다.18)
한편 한국의 근대 개념은, 그 시간적 함의가 전면에 부각되지 못함으로써 우리가 그간 경험한 매우 단절적이고 역동적이었던 변화들과 그 변화들에 내포된 새로움을 표현하는 의미론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우리의 ‘근대’는 ‘근세’의 의미에서 단순히 시대구분 개념으로 쓰이거나, 아니면 (혹은 동시에) ‘서양’이라는 낯선 문명과의 공간적 충돌로 인해 생긴 신드롬, 혹은―이와는 정반대로―트라우마의 명칭으로 기능하면서, 이를 통해 구한말 개화파와 위정척사파 간의 투쟁 이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대립의 기호가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근대 개념은 공간적이고 가치 지향적인 확고부동한 함의를 지닌 채, 동시에 주체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포로가 되어 있다.
우리의 현재를 규정지으려면 새로운 대안 개념이 필요할 것 같다. 그 개념은 하나의 보편적인 ‘근대’ 대신 다양한 근대화 및 근대의 경험들, 서로 다른 시간적 지속과 변화를 보이는 여러 개별 역사들을 동등하게 얽으면서 우리의 현재를 특징짓는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개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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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ean C. Tipps, “Modernization Theory and the Comparative Study of Societies: A Critical Perspective”, Comparative Studies in Society and History, vol. 15, No. 2, 1973, pp. 199~226; Hans-Ulrich Wehler, Modernisierungstheorie und Geschichte, Göttingen, 1975.
2) 교과서포럼,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 기파랑, 2008, 6ㆍ17ㆍ137쪽.
3) H. U. Gumbrecht, “Modern, Modernität, Moderne”, GGB, Bd. 2, Stuttgart, 1978, Bd. 4, pp. 93~131, 특히 pp. 95f.
4) 이나부 아키라, 서혜영 옮김, 『번역어 성립사정』, 일빛, 2003, 207~208쪽.
5) 박주원, 「근대적 ‘개인’, ‘사회’ 개념의 형성과 변화―한국자유주의의 특성에 대하여」, 『역사비평』 67, 2004 여름, 207~238쪽(인용부 208쪽).
6) 이나부 아키라, 「근대―지옥의 ‘근대’, 희망의 ‘근대’」, 『번역어 성립사정』, 54~72쪽.
7) 최학송, 「데카당의 상징」, 유광렬, 「모던이란 무엇이냐」, 『별곤건』, 1927년 12월호(김진송, 『현대성의 형성―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현실문화연구, 1999, 326~330쪽에 재수록).
8) J. Habermas, Der philosophische Diskurs der Moderne, Frankfurt a. M., 1988, pp. 18f.
9) 김진송, 『현대성의 형성―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9~19쪽.
10) 김경일, 『한국의 근대와 근대성』, 백산서당, 2003, 113~116쪽.
11) Cf. Mergel, Thomas, “Geht es weiterhin voran? Die Modernisierungstheorie auf dem Weg zu einer Theorie der Moderne”, idem/Welskopp, Geshcichte zwischen Kultur und Gesellschaft. Beiträge zur Theoriedebatte, München, 1997, pp. 203~232, 특히 pp. 228f.
12) ‘대안적 근대’에 대해 Lucian Hölscher, Die Entdeckung der Zukunft, Frankfurt a. M., Fischer, 1999, pp. 184~197; ‘유기적 근대’에 대해 Erhard Schtz/Hartmut Eggert/Peter Sprengel eds., Faszination des Organischen―Konjunkturen einer Kategorie der Moderne, München, 1995.
13) R. Koselleck, “Wie neu ist die Neuzeit?”, idem, Zeitschichten, Frankfurt a. M., 2000, pp. 225~239 참조.
14) H. U. Gumbrecht, “Modern, Modernität, Moderne” 참조.
15) R. Koselleck, 「‘근대’―현대적 운동 개념의 의미론」 참조.
16) W. Welsch, Unsere postmoderne Moderne(박민수 옮김, 『우리의 포스트모던적 모던』 2권, 책세상, 2001).
17) R. Koselleck, “Wie neu ist die Neuzeit?”, p. 228.
18) R. Koselleck, “The Eighteenth Century as the Beginning of Modernity”, idem, The Practice of Conceptual History. Timing History, Spacing Concepts, Stanford, 2002, pp. 154~169 참조.

(출처 : www.krpia.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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