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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폄)미셸 푸코 - 지식은 시대마다 재구성되는가

달고양이 Friday 2014. 10. 18. 23:01

 

미셸 푸코 - 지식은 시대마다 재구성되는가..

jiro78.egloos.com/1526990  글 서동욱 / 서강대 철학과 교수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가 소개하고 있는 중국의 한 백과사전에서 동물들은 이렇게 분류된다. 황제에 속하는 동물, 향료로 처리하여 방부 보존된 동물, 사육동물, 젖을 먹는 돼지, 인어, 전설상의 동물, 주인 없는 개 등등. 미셸 푸코(M. Foucault, 1926-1984)는 그의 저서 [말과 사물](1966)에서 이 분류법을 보면서 웃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서구인들의 사고방식 전체를 산산 조각 내 버리려는 웃음이다. 저 분류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유종이나 린네의 분류법 같은 서구인들의 주류적 사고방식 안에선 불가능한 것, 서구적 사유의 한계 너머에서 출몰하는 다른 사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지식 또한 영구 불변하는 진리 같은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 너머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푸코는 철학, 의학, 범죄학, 성적(性的) 영역 등에서 오가는 이야기들(담론, discourse)이 불변하는 ‘진리’를 담은 명제(proposition)로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학문 외부의 우연한 조건들 때문에 일정한 시대에 진리로 통용된다는 것을 보이고자 했다. 그것은 마치 지하에 묻힌 그리스의 옛 신전에 참된 신성(神聖)이 깃들고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그 신전이 어떻게 건축되었는지 지층을 탐구하는 ‘고고학자’의 작업과 유사하다. 고고학자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모든 종교의 신전들을 파헤치며 어떻게 당시의 사람들이 신에 대해 생각했고 교리상의 진리를 믿었는지 밝혀줄 수 있다. 푸코는 철학과 의학을 비롯한 학문의 수많은 신전들을 이런 고고학의 대상으로 삼았다.

예를 들어 ‘광기’의 경우를 보자. 서구적 이성은 유일무이한 보편적인 사유 방식을 확립하기 위해서, 결코 ‘이성 자신으로 동화될 수 없는 타자’를 배제해야 했다. ‘고전주의 시대’라 불리는 17세기에 이성이 하나의 사유 방식이 아니라, 사유 자체와 이질적인 것으로 배제한 것이 바로 광기다. 17세기 철학의 대표적 작품인 데카르트의 [성찰](1641)이 이 배제를 잘 보여주고 있다. 데카르트는 ‘모든 학문의 토대’를 놓기 위해, 제대로 확실하게 생각하는 길을 확보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 ‘확실성’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여러 가설을 스스로 세우고 반박한다. 내 생각이 혹시 꿈속에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악신(惡神)이 나를 잘못 생각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그러나 광기는 꿈이나 악신의 가설처럼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생각 내부의 요인으로 취급되지 않고, 생각함 자체 바깥의 타자로서, 즉 생각이 아예 아닌 것으로서 배제될 뿐이다. ‘저들은 한낱 미쳤을 뿐 뭔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17세기 사람들이 광기에 대해 가졌던 믿음이다.

그러나 19세기 낭만주의의 시대에 와서 광기는 예술 속에서 오히려 인간의 진실을 비추어주는 것이 된다. [광기의 역사](1961)에서 푸코는 말한다. “광기는 고전주의 시대의 오랜 침묵을 넘어 언어를 되찾는다.……인간의 내밀한 진실이 투명하게 비쳐 보이는 언어.” 결국 서구 근대인들이 말하는 이성의 보편성은 시대적으로나 장소에 있어서나 국지적인 것에 불과하며, 생각함의 가능성은 이성 너머의 미지의 땅으로 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철학적 진리를 역사적 변동과 연동해서 다룰 수 있는 것일까? 보통 우리는 철학은 영원 불변하는 진리를 다룬다고 생각하며, 이 사실 자체가 철학을 역사학과 갈라 놓는다. 역사학이 영원 불변하는 것 보다는, 시간적 추이에 따른 ‘변화’에 초점을 두는 한에서 말이다. 그러나 사실 철학자들 역시 진리가 어떻게 역사 속에서 변화하는지를 중요한 문제로 취급했다. 가령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의 끝부분에서, 이성이 유년기로부터 출발해 장년기에 이르는 ‘이성의 역사’를 말하는데, 이성은 앞 단계에서 불완전하게 파악한 진리를 종국엔 완전하게 파악하는 낙관적 발전을 거친다. 헤겔 역시 [정신현상학]에서 의식이 좌충우돌하며, 궁극적인 진리(절대지)에 이르는 역사적 과정을 그리고 있다. 헤겔에 따르면 진리란 고정된 불변적인 것이 아니다. “진리라는 것도 결코 어느 한쪽 편에 꼼짝 없이 눌러앉아 있는 그런 생명 없는 체통을 지닌 것은 아니다.” 진리는 역사 속에서 의식의 성숙에 발맞추어 변화한다. 따라서 진리의 출현을 보이는 일은 역사를 통해 의식이 어떻게 필수적인 변모를 겪어나갔는지를 기술하는 일과 동일한 것이 된다. “과정상에 있는 각 계기는 모두 필수적이어서 기나긴 모든 구간을 참을성 있게 거쳐 가야만 하고 그 모든 계기마다 꼼꼼히 살펴나가야만 한다.”

철학자 미셸 푸코
 
하이데거 역시 역사상의 시기마다 존재자들이 존재하는 방식이 달랐으며, 그에 따라 진리 개념 역시 변모하였음을 말한다. 헤겔이 역사에 따른 필연적 발전을 이야기하는데 비해 하이데거는 ‘역사적 시기마다 우열 없이 서로 차이 나는 진리만이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가령 “그리스 시대의 학문은 전혀 정밀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 학문의 본질상 정밀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정밀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근대의 학문이 고대의 학문보다 더욱 정밀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러한 생각은 전혀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므로 물체의 자유낙하에 대한 갈릴레이의 학설은 참인 반면에, 가벼운 물체는 위로 향하려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은 거짓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데거는 늘 존재자가 ‘본래적으로(eigentlich)’ 존재하는 방식을 찾아 헤맸다.

푸코 역시 진리를 역사적 구성물로 생각한다. 그러나 궁극적인 ‘본래적’ 존재 방식(하이데거)이나, 생각함과 존재함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절대지’(헤겔)로 수렴되는 역사가 푸코에겐 없다. 그저 역사상의 시기마다 우열 없는 서로 다른 사유 방식이 구성될 뿐이다. 진리의 본래적 자리와 절대지를 탐색하는 대신, 즉 진리의 기원과 목적지를 탐구하는 대신, 진리를 담지하는 모든 실재에 대해 의심한다는 점에서 푸코는, 회의주의자라고도 할 수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진리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탐구하는 푸코의 방법이 ‘고고학’과 ‘계보학’이다. 푸코의 ‘고고학’은 은유적인 의미를 지니므로 그 말 뜻 그대로의 의미가 무엇인지 보다는, 고고학이라는 명칭 아래 어떤 연구 방법을 푸코가 수립했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푸코는 [지식의 고고학](1969)에서 고고학의 특징 몇 가지를 정리하는데,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문장을 주목해야 한다. “고고학은 해석적인 과목이 아니다. 그것은 보다 잘 숨겨져 있는 ‘다른 담론’을 찾지 않는다.” 즉 고고학은 여러 시대의 담론들 배후에서 하나의 고정된 진리를 해석해내지 않는다. 고고학의 또 다른 특징은 역사상의 시기들 간의 ‘불연속성’이다. “불연속성이란 몇 년의 시한 내에서 어떤 문화가 그때까지 생각해 왔던 것을 이제는 더 이상 사고하지 않으며, 새로운 방식으로 다른 것을 사고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흔히 역사는 연속적인 발전과정을 가진다고 여긴다. 그러나 고고학은 역사상의 시기들은 인과율 없이 단절 되었다고 생각한다.
 
돈키호테라는 작품은 르네상스적 세계에 대한 하나의 부정이다.

 


고고학이 지닌 이 두 가지 원리를 예화 해 보자. 푸코는 단절된 시대들을 르네상스(16세기), 고전주의(17세기), 근대(19세기)로 구분한다. 16세기에 지식을 구성하는 것은 ‘유사성’이었다. “16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유사성은 서구 문화에서 지식을 구성하는 역할을 했다.” 예컨대 16세기 박물학자 벨롱(P. Belon)은 유사관계 속에서 이렇게 지식을 구성한다. “우리의 발뒤꿈치에 해당하는 새의 두 다리 뼈, 또한 우리의 발에 네 개의 발가락이 있는 것처럼, 새는 네 개의 발톱을 가지고 있다.” 발생적으로 서로 다른 기관들의 ‘외적 유사 관계’에만 주목한 이런 진술이 16세기엔 지식을 이루었다. 그러나 돌연, 이런 지식을 부정하는 사고방식이 출현하는데, 바로 17세기의 시작과 함께 출판된 [돈키호테](1605~1615)에서 우리는 그 부정을 목격한다. “돈키호테라는 작품은 르네상스적 세계에 대한 하나의 부정이다.……유사성은 기만적으로 되어 거의 환상이나 광기에 가까워졌다.” 풍차에서 그와 유사한 체구의 거인을 떠올리고 돌격하는 돈키호테의 환상에 대한 풍자를 생각하라. 17세기부터 유사성은 지식이 아니라 문학적 유희의 대상이 되었다. 세르반테스의 작품이 희화하면서 지식의 영역 밖으로 날려 버린 ‘유사성’을 뒤이어 철학 역시 지식 바깥으로 추방하는데, 데카르트의 [정신 지도를 위한 규칙들](1628)에 나오는 이런 구절이 그렇다. “사람들은 종종 두 사물에 어떤 유사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심지어 그것들이 실제로 서로 다른 것일 경우에도, 그 둘 중 하나에만 대해 참이라고 인정했던 것을 두 사물에 모두 적용하는 버릇이 있다.” 이 버릇은 17세기에 지식의 영역 밖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영원 불변하는 진리가 무엇인지 묻기 보다는, 한 시대가 어떤 특정 법칙이나 관계를 진리로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파헤치는 것이 푸코의 ‘지식의 고고학’이다. 푸코가 1970년대 고고학 대신, 니체의 방법을 계승하여 내세운 계보학은 무엇인가? 고고학을 보완한 계보학의 가장 큰 특징은, 한 시대의 지식의 구성 조건으로 당대의 ‘권력’을 고려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계보학적 방법을 적용한 대표적 작품이 감옥의 역사를 연구한 [감시와 처벌](1975)인데, 지식의 성립 조건으로 당대의 권력이 고려되지 않을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가령 범죄학이라는 지식은 범죄자를 색출하고 위험시하는 권력에 의해서만 탄생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푸코가 말년에 몰두한 작업은 역사상의 지식이 어떻게 성립했는가를 비판적으로  탐구하는 작업에 제한되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삶을 어떻게 꾸며나갈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이 작업을 바로 ‘실존 미학(Esthétique de L’existence)’이라 부른다. 르네상스에서 근대에 이르는 역사적 시기를 전문으로 했던 푸코는 이 실존미학을 완성하기 위해 갑자기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헌들로 무대를 옮긴다. 죽기 얼마 전 빛을 본 [성의 역사] 2, 3권(1984)과 이 책을 쓰던 무렵의 강의록인 [주체의 해석학](2001)이 실존 미학에 몰두했던 푸코의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 실존 미학이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주체의 형성에 내포된 엄격성의 요구는 각자 그리고 모두가 따라야 할 보편적 법칙의 형태로 제시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은 자신의 삶에 가장 아름답고 완성된 형식을 부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행동을 양식화하는 원리로서 제시된다.”
 
쉽게 생각해 보자. 늘 우리 삶을 규정하는 규칙들이 있다. 국가의 법률, 교칙, 사내 규정, 종교적 교리 등등. 그런데 우리는 이 규칙들을 기계적으로 적용해서 우리 삶을 꾸미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저런 규칙들을 떠나 늘 우리 삶을 어떻게 꾸며야 하는지 고민한다. 역사상 이런 고민의 모범은 바로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의 삶에서 발견된다. 그들에겐 획일적으로 규칙에 종속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자유인으로서 삶의 따라야 할 바를 독자적으로 창조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렇게 실존의 방식을 창조하는 일은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일과 같지 않은가? 그래서 여기에 실존미학이라는 명칭이 붙는다. 주체가 자신의 실존 방식을 창안해 내는 이 방식은 획일화될 수 없기에 푸코는 성윤리, 자기수양, 명상 등등 삶의 세세한 영역에서 그것을 탐색해 나간다.
 
늘 우리 삶을 규정하는 규칙들이 있지만 우리는 이런저런 규칙들을 떠나 늘 우리 삶을 어떻게 꾸며야 하는지 고민한다. <출처: NGD>

푸코가 철학에 불어넣은 활기를 우리는 ‘반 인간주의’라는 이름과 더불어 기억한다. 반 인간주의의 핵심은 어디에 있는가? 아마도 의식 철학과의 대립에 있을 것이다. 칸트로 대표되는 의식 철학은 지식을 구성하는 것은 인간 주체의 의식이라고 생각했다. 의식의 통일성을 바탕으로, ‘인과율’ 같은 우리 마음에 뿌리를 둔 범주가 현상에 적용되어 지식이 구성된다는 것이다.(우리 의식이 통일적이지 않으면, 대지가 때론 수확으로 때론 얼음으로 덮이는 혼란이 찾아오리라.) 반면 푸코의 모든 작업은 인간의 의식이 알아차릴 수 없는 역사적‧사회적 조건이 지식을 구성한다는 것을 보인다.(지식을 구성하는 저 조건을 푸코는 ‘에피스테메’라고 불렀다.) 더 이상 지식의 구성에서 인간 의식의 자발적 능력은 역할을 가지지 않으며, 이런 의미에서 인간이라는 개념은 그 중요성을 상실한다. 그러므로 칸트 시대에 철학이 흄에 의해서 독단의 잠에서부터 깨어나는 데서 시작되었다면, 푸코가 깨어난 잠은 인간학의 잠이다. “이번에는 독단의 잠이 아니라 인간학의 잠이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칸트의 초월적 통각 같은 인간 의식의 역할은 이제 사라지게 되는데,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극적으로 표현한다. “우리는 인간이 마치 해변의 모래사장에 그려진 얼굴이 파도에 씻기듯 이내 지워지게 되리라고 장담할 수 있다.”
 
글 서동욱 / 서강대 철학과 교수
벨기에 루뱅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으며 [익명의 밤], [일상의 모험―태어나 먹고 자고 말하고 연애하며, 죽는 것들의 구원], [들뢰즈의 철학―사상과 그 원천], [차이와 타자―현대 철학과 비표상적 사유의 모험] 등의 저작이 있다.
발행일  2011.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