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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케로 국가론 본문

정치적 사유

키케로 국가론

달고양이 Friday 2014. 11. 2. 06:40

 

 

『국가론』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저, 김창성 역(한길사, 2007)

 

국가론을 읽을 때 아래 서평 또는 기존의 관점이 강조하는 법치주의, 자유주의에 대한 강조보다, 3권의 '이성'에 대한 강조를 눈여겨 볼 만하다. 키케로의 저서가 역사적 1차 사료로서 의미가 있다면, 그것에서 법치주의, 자유주의에 대한 중요성을 도출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키케로와 카이사르가 살던 로마의 시대적 맥락 속에서 키케로가 언급한 내용이 국가권력의 측면에서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출처: 계간 시대정신

(http://www.sdjs.co.kr/read.php?quarterId=SD200801&num=166)

 

[서평] 21세기에 나타난 키케로에게 듣는다


[이명희 | 공주대 교수, 자유주의교육운동]
1. 21세기가 되어서야 우리에게 나타난 키케로의 『국가론』

키케로의 『국가론』은 기원전 55~51년께 쓰였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책은 동서고금의 고전으로서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영향을 주고 또 알려졌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좀 생소한 책이다. 웬만한 식자층도 『국가론』 하면 플라톤이나 레닌 정도를 떠올리고 키케로까지 생각이 미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키케로는 로마 공화정을 최후까지 옹호하였던 정치가요, 법률가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즉, 우리의 서양 지성사에서 키케로의 존재는 거의 전무하다고 할 정도다.

키케로의 『국가론』은 1819년에 바티칸 도서관장 앙겔로 마이 추기경에 의해 『바티칸 사본』이 발견되기까지는 아우구스티누스 등에 의해 부분적으로 인용되어 이름만 전할 뿐이었다. 『바티칸 사본』조차도 이중으로 기록된 양피지 문서인 ‘팔림프세스트(Palimpsest)’의 형태로 전체의 4분의 1에서 3분의 1 정도만이 발견되었다. 그것이 1934년에 처음 영인되었고, 텍스트로 처음 발간된 것이 1969년이었다. 텍스트화 이후 약 40년이 지난 2007년에 우리나라에서도 드디어 한글로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한글 번역자인 김창성 교수는 키케로의 『국가론』이 갖는 의의를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즉, “우리가 정치학 교과서보다는 정치가의 회고록에서 더 중요한 역사적 체험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키케로의 글은 우리에게 행동하는 정치가로서 귀감과 포부, 덕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만큼 더 큰 감동을 자아낸다고 하겠다. 또한 그의 『국가론』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당대의 로마 정치가로서, 그들의 입을 통해서 로마 지배층의 현실 파악의 시각을 엿볼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점에서 로마의 역사를 연구하는 1차 사료로서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라고 역자 후기에서 밝히고 있다. 플라톤의 『국가론』이 순수한 철학자로서 국가에 관한 관념을 이론적으로 정리한 ‘정치학 교과서’라면, 키케로의 『국가론』은 실제 로마의 정치에 관여하면서 그 정치 현실을 기록하고 비평한 ‘정치 회고록’의 특성을 갖는다고 평가하고 있다.

번역자의 평가처럼 키케로의 『국가론』은 당대의 현실에 대한 기록으로서 사료적 가치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더욱 큰 의미는 플라톤의 『국가론』처럼 현실 정치에 대한 혐오나 부정에 동기를 둔 이상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 국가관뿐만 아니라, 현실의 정치 경험을 바탕으로 로마의 현실적 정치 체제를 옹호하려고 했던 자유주의적이고 공화주의적 국가관이 고전 시대부터 있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는 국가에 대해 다시 고쳐 생각을 정리해야 할 시점에 있다.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맞이하여 모름지기 국가란 무엇이며, 대한민국은 어떤 국가인지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 키케로의 『국가론』은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때마침 키케로의 『국가론』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우리 앞에 있으니, 우리의 정치 현실과 대한민국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데에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2. 키케로의 『국가론』 주요 내용

키케로 『국가론』 원문은 내용이 생소한 것이 많아 곧바로 읽고 이해하기는 용이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고대의 사고방식을 기록한 것에 유래하겠지만, 고대 로마사에 대한 상당한 정도의 교양과 지식을 필요로 한다. 키케로의 『국가론』은 기원전 129년께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 진행 중인 시기에 로마의 원로원파 주요 정치인들로 구성된 스키피오 서클의 구성원이 축제일을 기해 스키피오 집에 모여 사흘 동안에 걸쳐 로마의 정치에 대해 토론한 내용을 하루에 2권씩 총 6권의 대화체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당시 로마의 역사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 내용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원문이 3분의 1 정도도 못 미치게 남아 있기 때문에 내용이 중간중간에 단절되는 데에 따른 어려움도 가중된다.

하지만 역자의 친절한 배려 덕분에 약간의 의욕을 가지고 읽으면, 충분한 재미와 값진 내용을 음미할 수 있는 고전이라는 것을 곧 발견하게 될 것이다. 로마사 연구자인 역자는 원문을 매우 꼼꼼하게 번역하는 한편,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석과 해제를 상세하게 달고 있다. 또한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번역의 원칙을 밝히고, 「키케로를 통해 본 고대 국가의 이상과 현실」이라는 도입 글을 통해 이 책을 읽을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즉, 도입 글에서는 원본의 발견 과정을 소개하고, 본서의 배경으로서 키케로가 의거하고 있는 스토아 사상과 국가관에 대한 해설을 하는 한편, 스키피오 서클과 그 구성원에 대해서 설명하고, 로마 공화정 후기의 정치사에 대해서도 그 흐름과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하고 있다. 나아가 키케로의 정치 사상을 소개하면서 플라톤의 『국가론』과 비교하는 친절함도 베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로마의 관직·제도 일람’이라는 장을 설정하여 로마사 관련 용어들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본서는 6권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권에서는 ‘공화정(res publica)’의 의미를 말하면서 왕정과 귀족정 그리고 민주정의 세 정체 중에서 어느 것이 최선인지에 대해 논하고 있다. 제2권에서는 로마의 역사를 논하면서 로마 정체의 우월함을 주장하고, 이상적인 정치가와 정의에 대해 논의한다. 제3권에서는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을 국가에 적용하여 국가 발전에서 이성의 중요성을 논의한다. 제4권은 원문이 매우 부분적으로밖에 남아 있지 않아 짧은데, 플라톤의 재산과 자녀 등의 공유론에 대해 “어느 누구도 그보다 더 잘못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점에서 실수를 범했다.”라고 비판하는 한편, 명예를 중시하는 로마의 전통을 옹호하고 있다. 제5권 또한 원문이 거의 유실되어 얼마 되지 않는데, 로마의 전통적 관습과 미덕에 대해 논의하고 있으며, 제6권은 스키피오의 꿈 이야기를 통해 정치가의 활동은 동상이나 월계관으로 보상받는 것이 아니라, 국정을 맡는 것 자체가 신에 의해 인정받는 것이며 신이 보상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정치를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특히, 키케로는 로마 공화정의 우월성에 대하여 스키피오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즉, “다른 나라에서는 개인들이 있어서 각자가 자신의 법률과 제도로써 나름의 국가를 만들었고, 결국에는 그 국가가 세력을 잃고 약화된 상태에 빠진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반면에 우리나라는 한 사람의 재능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수에 의해서, 한 사람의 생이 아니라 여러 세기와 세대에 걸쳐서 구성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는 설명하기를 어느 한때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지 못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정도로 큰 재능을 가진 사람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위인에게 모든 재능을 합쳐도 사물을 사용하거나 오랜 기간 경험하지 않고도 모든 것을 포괄하도록 일시에 예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라며 어떤 누구도, 그리고 어떤 제도도 완벽하지 않다는 자유민주주의 기본 원리를 일찍부터 표방하고 있다. 그리하여 통령과 원로원 그리고 호민관의 상호 견제와 권력의 균형을 특징으로 하는 로마의 공화정체가 왕정과 귀족정 그리고 민주정의 혼합 정체로 가장 우월하다는 입장을 주장하고 있다.


3. 키케로의 『국가론』 편찬 동기와 의의

키케로가 『국가론』을 집필한 시기는 제1차 삼두정치가 진행되면서 로마 공화정이 위기를 맞고 있던 시기였다. 특히 크라수스가 파르티아인들과의 전쟁에서 패사(BC 53년)하면서,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 사이에 대립이 격화되어 내전이 임박해 가던 시기였다. 즉, 키케로는 로마의 정치 정세가 매우 긴박하게 전개되는 위급 상황에서 로마 공화정이 완전히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로마의 공화제를 최상의 정치 체제로 생각하고 있던 키케로는 자신의 정치철학을 체계화하여 원로원 의원들과 시민들에게 호소함으로써 공화정을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민중파(포퓰라레스)인 카이사르가 집권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키케로는 직접화법을 통하여 공화정을 옹호하고 민주정 혹은 중우정을 비판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컸기 때문에, 反그라쿠스 개혁의 입장에 서 있던 스키피오 서클 구성원의 입을 빌려 포퓰라레스의 위험성을 경고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즉,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으로 로마의 대권이 폭력으로 바뀌고 인민들이 비뚤어지게 나감으로써 로마가 분열되었음을 라일리우스의 말을 빌려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키케로의 『국가론』 집필 동기는 당시 로마의 정치 상황 속에서 공화정을 옹호하려는 것이었으며, 포퓰라레스로서 카이사르의 정치적 지향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키케로의 『국가론』 집필의 의의가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키케로는 플라톤의 정치와 교육에서 이상주의적 공유제도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였으며, 개인의 자유와 욕망을 긍정하고 옹호하였다. 또한 개인의 자유가 방임으로 흐르지 않고 공적인 자유가 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를 공적으로 보장해 주는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법에 대한 신뢰를 해야 하며, 또 공동체 내부의 통합을 위해서는 공적인 것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을 가장 처음 본격적으로 주창하였다. 우리나라는 올해 건국 60주년을 맞는다. 많은 분이 키케로의 『국가론』에 대한 음미와 평가를 통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의 정신을 재평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시대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