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에서 화해란 무엇인가?

성산읍 터진목 희생자 위령비

제주 4․3의 과거 청산을 말할 때 ‘화해’가 강조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제주 4․3의 과거 청산을 말하면서도 화해를 심도있게 논의해 본 적이 없습니다. 도대체 제주 4.3에서 말하는 화해는 무슨 의미인가요? 화해를 이야기 할 때 어떤 화해를 말할 것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화해는 사전적 의미로 ‘갈등과 다툼을 그치고 서로 가지고 있던 나쁜 감정’을 풀어낸다고 정의됩니다. 사전적 의미는 일상적으로 화해는 서로 다툰 친구 사이의 관계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일련의 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됩니다. 법률적 의미에서 화해는 민사상의 분쟁과 관련된 소송 당사자가 서로 양보하여 분쟁을 끝내기로 약속하는 행위로 규정됩니다.

하지만, 과거 청산과 관련된 거시적 수준, 즉 국가 공동체 수준의 화해는 회복해야 할 상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미시적 수준의 화해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화해를 정치 철학, 정의(justice)의 관점에서 정의되기도 합니다. ​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으로서 나치 정권에 의해 살해될 수 있었지만, 독일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그는 나치 정권에서 학살을 감행한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한 후, 아이히만의 말에 문제의식을 자신의 철학을 전개했습니다. 아렌트에게 독일 나치에서 학살을 저지른 인간을 체포하고 벌을 주는 것만으로 화해가 가능한가에 대한 문제의식도 드러냈습니다. 그는 화해를 기존의 사고에서 벗어나 새롭게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화해는 짓밟힌 상상속의 도덕적 질서를 회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국가 구성원들 간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Hannah Arendt, Men in Dark Times, London:Harcourt Brace & Co., 1968. p.11

 

정치적 공동체에 있어 화해는 갈등과 반목이 있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과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성원 간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회심리학자이면서 정의(justice) 연구가인 오토포우 역시 아렌트와 유사한 의견을 피력한 바 있습니다. 그는 화해를 정의의 관점에서 정의내리고 있습니다.

화해가 엄청난 긍정적 잠재력을 갖고는 있지만, 만일 그것이 불의를 은폐하고 사회 변화를 방해하며 현상을 유지하려는 공허한 의식에 그친다면 사람들은 실망할 것이다. 범죄 면벌과 만행이 있고 난 후에 실행되는 화해라는 도전은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창출하려는 것이다. 화해는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이해를 만들어내기 위해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것뿐 아니라 그 이상의 뭔가를 요구한다.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근원적이고 만성적인 불의에 정정당당하게 맞서는 것, 그리고 이런 이슈들을 분배적, 절차적으로 공정하고 진정으로 포괄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룰 수 있는 여러 제도의 동원을 필요로 한다.

Susan Opotow., “Reconciliation in Times of Impunity: Challenges for Social Justice,” Social Justice Research June 2001, Volume 14, Issue 2, pp.149-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