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illekim 님 | 2004-10-18 | 책내용 책상태
지식의 고고학-권력과 지식에 대한 계보학적 분석
정신병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약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않은 사람들을 치료하는 곳이라고 사전적인 이해만 갖고 있다면 푸코의 논리를 적극적으로 참조해보자. 푸코에게 있어 정신병원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인간적 장치가 아니라 이성 중심적 사회가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가치기준으로 광인을 추방하고 감금해온 장소이다. 때문에 인간에 대한 권력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억압적 수단의 필연적 산물이다. 감옥도 마찬가지다. 범죄자들의 단순한 수용소가 아니라 권력의 사회통제를 위한 전략의 결과이며 그 범죄자들은 경제적, 정신적으로 유용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존속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기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푸코의 대표적인 저서 중 하나인 <지식의 고고학>은 <광기의 역사>, <임상의학의 탄생>, <말과 사물> 등을 통해 논의했던 권력과 지식에 대해 추상적이고 정교한 인식론적 언어로 정리하고 있다. ‘지식’과 ‘고고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책의 제목을 정한 것처럼 <지식의 고고학>은 권력과 지식에 대한 계보학적으로 검토하고 분석한 책이다.
푸코의 논의는 서구의 근대사회를 이룩한 주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답을 찾은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푸코는 규율 지키기와 몸 길들이기를 통해서 근대를 살아가는 ‘주체’가 만들어졌다고 보았다. 근대 사회에서 병원이나 감옥 등과 같이 수많은 규칙이 만들어지고 그 규칙에 맞춰 살아가게 되면서 삶은 길들여졌고 그 길들임 속에 권력이 있다고 분석한다. 즉, 권력이 근대 주체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체는 이제 더 이상 역사를 뛰어넘는 본질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특정 단계에서 특정하게 형성되는 것일 뿐이다. 푸코는 이러한 권력은 개인의 몸에 작용하는 일정한 관계망 속에서 권력의 작용을 살필 수 있다고 말한다. 즉 푸코에게 있어 권력은 어떤 개인, 집단, 기구가 소유하는 실체가 아니라 관계망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은 우리가 쉽게 상상하듯이 단순히 금지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길들이기는 규율을 통한 제약이자 억압이다. 이를 ‘규율적 권력’이라고 한다면 오늘날의 사회는 ‘규율화된 사회’이다. 푸코가 ‘사회 전체가 하나의 감옥’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자율적 권력이 자유롭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감옥과 교도소, 병원은 물론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학교의 경우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생각하면 학교에서의 권력을 이해할 수 있다. 푸코는 이러한 권력이나 지식에 대해 고고학이라는 ‘학문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토대로 사회 전반에 걸쳐 관념적인 것의 근본원리와 절차를 거부한다. 이것은 그가 우리가 대상에 대한 절대적인 지식이 아니라 어떤 물적, 역사적 조건 하에서의 대상에 대한 정치적인 사고가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푸코는 서구의 합리주의와 이성주의에 대해 인식론적으로 비판한다. 그는 정상/비정상, 동일자/타자, 내부/외부 사이에 만들어져 있는 경계를 파괴하고자 한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예에 의하면 소위 정상인과 그들에 의해 배제된 광인들 사이에 놓여진 구획선의 허구를 고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의식-인식-과학의 축(주체성이라는 지수(指數)로부터 해방되지 못하는)을 가로지르기보다, 고고학은 언설적 실천-지식-과학의 축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지성사가 인식의 요소 속에서 그의 분석의 평형점을 찾는 데 반해(그와 같이 함으로써 결국 그의 의도에 관계 없이 초험적인 물음을 만나야 하는 데 반해), 고고학은 지식 속에서-즉, 주체가(초험적 활동으로서든 경험적 의식으로서든) 특권적인 위치를 가지지 못한 채 필연적으로 그 안에 위치해야 하고 의존해야 하는 영역 속에서-그의 분석의 평형점을 찾는다. <254쪽>
푸코는 진리이자 과학이라고 평가되는 ‘지식’에 가려져 있는 ‘침묵의 소리’에 관심을 기울인다. 왜 침묵의 소리가 되었는지, 왜 정상인이 아닌 광인으로 평가되는지 찾으려고 한다. 이를 위해 푸코가 접근하는 것은 문학이나 미술 등 다양한 문화적 유물이다. 과학이나 역사에서 다루지 않은 소외받고 인정받지 못한 대상에서 잊혀진 과거를 되살려내고 이런 작업을 통해 권력이나 지식의 의미나 가치를 찾으려 한다. 푸코는 이것을 ‘지식의 고고학’이라고 부른 것이다.
고고학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이 남긴 유적이나 유물과 같은 물질 증거와 그 상관관계를 통해 과거의 문화와 역사 및 생활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역사의 서술에 있어 지배층이나 새로운 왕조는 과거의 사실이나 의미를 의도적으로 새롭게 해석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서술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이다. 푸코가 <지식의 고고학>은 물론 이전에 쓴 저서를 통해 주류층의 인식 대상이 되는 과학과 역사 이외의 자료에 해당하는 문화적 유물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아 지식의 고고학이라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는 지식이 권력제도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강조하는 푸코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식이나 과학이 옳고 그름을 떠나 사용자의 입장에서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해악을 구분할 수 있듯 푸코는 기능론적인 입장에서 지식과 권력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상은 오늘날 대표적인 철학자로 인정을 받고 있는 루이 알튀세와 같은 것이기도 하다.
푸코는 지식과 권력을 소재로 근대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철학과 역사를 합병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는 인간을 중심으로 한 논의 대신에 언어구조나 무의식 등 기존의 인간 중심의 사고를 거부하고 광기, 질병, 범죄, 성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관념의 절대성을 비판했다. 이와 같은 독특한 사유체계 때문에 푸코는 프로이드와 마르크스를 탐구하고 소쉬르와 레비스트로스와는 또 다른 철학의 영역을 갖고 있다고 평가된다.
푸코는 또 ‘언설적 형성과 그 변환에 대한 분석’을 고고학이라고 불렀다. 고고학을 과학사적 원전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때문에 푸코에게는 원전 속에 있는 언어들을 어떤 관점에서 다룰 것인가의 문제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언표’와 ‘언설’이라는 용어를 이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푸코의 언표는 주체가 자리를 잡게 되는 장(場)이며 물질성의 기초 위에서 정의된 것이다.
언표는 물론 언어적 기호를 가지고 만들어낸다. 푸코는 타자기의 문자판을 예로 들었다. 컴퓨터의 키보드를 생각해보자. 키보드의 문자 배열은 언표가 아니다. 그러나 컴퓨터 매뉴얼에 타자 연습용으로 나와 있는 문자판의 그림은 언표이다. 그것은 매뉴얼 ‘편집자’가 ‘초보자’의 학습을 위해 제시한 도판이기 때문이다. 편집자가 의도하는 바에 따라 학습자는 초보자도, 중급자도, 고급자도 될 수 있으며 학습자는 매뉴얼에 따라 학습을 할 수밖에 없다. 똑같은 문장, 똑같은 명제도 하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고, 같은 사람의 같은 말도 시간과 공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아니 반드시 달라지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권력이나 지식을 매뉴얼로 생각해보라.
푸코는 고고학이 거부하고 있는 여러 사유의 형태들을 날카롭게 분석함으로써 새로운 역사 철학을 형성했으며 <지식의 고고학>은 이에 대한 철학적 해설서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읽을 것인가>
미셸 푸코를 이해하는 것은 구조주의, 현대인식론, 현대문학, 과학사를 동시에 알고 있을 때 가능하다. 철학적인 내용인 경우 읽기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읽기를 포기하거나 이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기 쉽다.
푸코는 지식(savoir)을 ‘한 언설적 실천에 의해 규칙적인 방식으로 형성된 그리고 한 과학의 구성을 위해서 필수불가결한(그것이 반드시 과학을 탄생시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이 요소들의 집합’이라고 정의했다. 사전적 의미만으로는 지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지식’이라는 단어가 푸코의 사상과 연결돼 새로운 의미를 갖고 있어 일반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해석해야 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푸코의 지식 개념은 과학이 존재할 경우 반드시 그 과학으로 가능하다는 가능성의 조건으로서의 ‘지식’이 있어야 하지만 하나의 지식이 존재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로부터 어떤 과학이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과학사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도 미시적 또는 거시적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과학사를 다루는 대상이나 수준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기존과는 전혀 다른 과학사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읽기와 해석과 이해를 할 수 있을 때 지식과 권력에 대해 ‘진리를 가면처럼 쓰고 있는 또 하나의 독단’이라고 주장한 푸코의 말을 알 수 있게 된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이 등장하고 구체적인 사례나 쉬운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읽기는 더욱 곤혹스럽다. 하지만 푸코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주요저서인 만큼 이 책을 통해 푸코의 반인간중심주의적 철학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추상적이고 인식론적인 논의를 이해하는 데 부족함을 느낄 때는 푸코의 다른 저서들, 즉 <광기의 역사>, <임상의학의 탄생>, <말과 사물>을 읽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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