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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담의 공리주의 본문

정치철학

벤담의 공리주의

달고양이 Friday 2023. 5. 2. 11:17

행복은 '쾌락의 향유, 고통으로부터의 안전'

 

벤담

벤담은 행복을 '쾌락의 향유, 고통으로부터의 안전'이라고 보았습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은 벤담이 먼저 사용한 용어가 아닙니다. 벤담 이전의 지식인들도 공리주의를 표명했습니다. 허치슨(Fr. Hutcheson), 퀸시(J. Quincy), 베카리아(C. Beccaria), 뷜라마키(J.-J. Burlamaqui) 등은 이미 ‘최대다수의 최대행복(the greatest happiness for/of the greatest number)’ 개념을 벤담보다 앞서 국가철학의 핵심으로 제시했습니다.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공화주의와 자유주의 사회계약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홉스의 주요 관심사인 안전은 당대 사회뿐만 아니라 벤담의 공리주의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벤담은 홉스의 철저한 학습자"

James E. Crimmins, "Bentham and Hobbes: An Issue of Influence" Journal of the History of Ideas Vol.63, No.4 (Oct., 2002), pp.677-696.

우리가 공리주의, 특히 벤담의 공리주의를 학교에서 배웠고, 그리고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 법률로, 의사결정 기준, 규칙의 원리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특수한 상황에서 적용되거나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벤담은 효용(utility), 즉 행복을 계산하려 했고, 이런 사고가 현대 경제학(후생경제학 등)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벤담의 사회관

벤담은 사회를 개인의 총합으로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총 행복을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가 개인의 단순총합이 아니라면, 벤담의 논리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공리주의는 자유주의와 잘 결합할 수 있지만, 공화주의 철학과 맞지 않습니다. 물론 롤즈도 공리주의를 비판했지만, 마이클 센델이나 공화주의 철학자들이 벤담의 공리주의를 비판합니다. 공화주의 철학은 사회는 개인의 합 그 이상으로 보아 공동선을 강조합니다. 이런 점 때문에 공리주의 철학과 정면으로 부딪히게 됩니다.

벤담의 인간관

벤담은 고통을 회피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으로 보았습니다. 벤담은 인간본성으로 현실주의적인 인간, 즉 자기 이익을 추구하며, 타인의 이익과 관련된 이익을 등한시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인간관에 입각해서 행복을 '쾌락의 향유, 고통으로부터의 안전’으로 정의합니다. 그런데 벤담은 모든 사람의 쾌락과 고통은 질적으로 같지만, 양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벤담은 1) 사회는 개인의 총합이며, 2) 인간의 본성 3) 쾌락과 고통의 질은 같지만, 양적으로 다르는 일련의 전제를 통해 한 사회의 행복과 고통을 계산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벤담이 쾌락과 고통의 양이 사람마다 다르다고 전제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이런 인식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실제로 벤담은 행복을 계산할 때, 왕의 행복이 가장 크다고 보았습니다. 반대로 가진 것 없는 거지의 행복이 가장 작다고 보았습니다.

아무튼 벤담은 가능한 대안적 행위들 중 전체 세계에 미치는 악을 뺀 최대의 선(행복)을 낳는 행위가 옳은 행위라고 주장합니다. 가령, 구걸하거나, 일을 하지 않는 행위는 경제적으로 악이므로 이를 뺀 대안적인 행위 중에 돈을 버는 행위 중 최대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행위를 선택해야 사회 전체적으로 행복이 확대된다고 보았습니다. 벤담은 걸인들, 즉 사회의 쾌락을 감소시키는 자를 처벌하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벤담 공리주의의 경제적 맥락

인클로저는 매우 오랫동안 진행되었습니다. 1500년에서 1914년까지 인클로저 법률이 제정되었습니다. 거의 400년 동안 인클로저가 이루어졌습니다. 대토지 소유자들이 오픈필드 커먼즈를 사유 재산으로 만들어 냅니다. 대륙에서도 봉건제 사회로 다시 회귀하려는 힘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힘들을 지배권력이 짓밟아버립니다. 이 경제적 배경속에서 청교도 혁명, 의 명예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혁명은 가진자들의 혁명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속에서 공화주의 철학과 자유주의 철학, 즉 사회계약론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주권은 시민사회의 권력이라고 주장하고, 주권은 토지를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홉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로크는 <통치론>에서 노동에 의한 재산권 획득을 강조하며 재산권 중심의 자유를 강조했고 신대륙으로 이주하여 토지를 획득하라고 암시합니다. 로크 역시 신대륙에서 대토지를 소유했던 사람이었으니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사회에서 인클로저로 인해 농촌의 많은 농민들이 거리를 배회하거나 일부는 반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지배집단의 입장에선 이들이 위험으로 인식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구빈민법을 제정하여 위험을 관리하려고 했습니다.

벤담은 인클로저로 인해 농촌에서 이탈하여 거리를 배회하는 걸인들이 사회의 행복을 감소시키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들을 집단시설에 거주시켜 일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정책을 실행해 보기도 합니다. 복지학에서도 벤담의 공리주의를 배운다고 합니다. 복지에서 벤담의 영향은 일하는 복지가 될 것입니다. 과거 독재정권에서 사회 정화를 내세우며 평범한 사람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강제로 노동시키고 구타했던 형제원 사건 등을 떠올려 보면 벤담의 공리주의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자연은 인류를 ‘고통과 쾌락’이라는 두 주권적 주인의 통치하에 두었다. 단지 고통과 쾌락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결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해야 만 하는 일을 파악할 수 있다. [고통을 회피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또 다른 면에서 원인과 결과의 사슬[인과관계]은 왕좌[고통과 쾌락]와 연결되어 있다. 고통과 쾌락은 우리가 하는 모든 것, 우리가 말하는 모든 것, 생각하는 모든 것에서 우리를 통치한다. 우리가 복종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할수록 단지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확인하게 될 수밖에 없다. 달리 말하면, 인간은 [고통과 쾌락의 종속] 제국을 배척하는 척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인간은 [고통과 쾌락의 종속] 제국에 남아있게 될 것이며 항상 그것에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공리의 원칙을 통해 이 종속상태를 인정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이성과 법의 손에 의해 지복의 구성을 내세우는 목적, 그 체제의 토대[공리주의]를 당연하게 여기게 될 것이다.
그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체계는 감각 대신 소리, 이성 대신 변덕, 빛 대신 어둠에 의존한다. 그러나 은유와 선언으로 충분합니다. 그러한 수단으로 도덕 철학이 개선되지 않는다.
Bentham, J. 1781. Introduction to the principles of morals and legislation. Batoche Books 2000.
이 논문의 토대는 효용의 원리입니다. 처음에는 효용의 원리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익이 문제되는 당사자의 행복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켜야 하는 경향에 따라, 모든 행위를 승인하거나 승인하지 않는 원리가 효용의 원리이다. 즉 그 행복을 증진하거나 반대하는 것과 동일하다. 개인의 모든 행위뿐만 아니라 정부의 모든 조치에 대해서 해당된다.
Bentham, J. 1781. Introduction to the principles of morals and legislation. Batoche Books 2000.
효용은 이익, 이점, 쾌락, 선 또는 행복을 생산하는 경향이 있는 어떤 대상의 특징을 의미한다. 효용은 이익이 고려되는 당사자에게 손해, 고통, 악 또는 불행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한다. 해당 당사자가 일반적인 공동체이면 공동체의 행복, 특정 개인이면 해당 개인의 행복이다.
Bentham, J. 1781. Introduction to the principles of morals and legislation. Batoche Books 2000.
그러면 어떤 행위가 공동체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경향이 행복을 감소시켜야만 하는 경향보다 클 때 그 행위는 (대체적인 공동체의 의미로) 효용(utility)의 원칙, 또는 간단히 말해서 효용(utility)에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Bentham, J. 1781. Introduction to the principles of morals and legislation. Batoche Books 2000.
인간의 행동 또는 (정부의) 조치에 승인 또는 비-승인 할 때 공리 원칙이 공동체의 행복을 늘리거나 감소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에 비례해서 결정되었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공리의 법률이나 명령에 대한 적합 또는 부적합 여부입니다. Bentham, J. 1781. Introduction to the principles of morals and legislation. Batoche Books 2000.

벤담의 공리주의를 행위 공리주의, 결과 공리주의로 분류하는 것을 위 문장에서 파악할 수 있습니다. 행위 공리주의는 결국 장래에 기대되는 행복에 의존합니다. 벤담의 이런 관점은 J.S. 밀이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밀은 벤담의 공리주의의 기대 의존성의 문제, 즉 행복이 장래에 기대한 바에 따라 일어나지 않을 수도, 유지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 Mill, J. (1833), ‘Remarks on Bentham’s Philosophy,’ in Collected Works of John Stuart Mill, vol.10, p.12.

벤담의 <구빈법과 빈자 관리에 관한 소고> "구걸이 초래하는 위해"
1. 보행자가 흔히 겪는 예로, 거지들이 구걸하려고 끈덕지게 달라붙으면 어느 정도 동정심(고통)이 생긴다. 고통이 없으면 자선 기부도 없다. 구걸은 거지에 붙잡힌 눈에 띤 마음 여린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강탈이다.​
2. 역겨움: 거기에 동정심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동정심을 품게 되면 뭔가 베풀었다는 위안이 생기는데 역겨움에는 그런 것도 없다. 추잡한 거지를 보고 솟구치는 역겨움에서 벗어나는 건, 그저 그에 상응하는 추잡한 반응에서 벗어난다는 것일 뿐이다. 동정심이나 역겨움이라는 이런 고통을 당하는 그 사람들 중 다수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 거지가 일하지 않고 구걸하며 얻는 안락함보다 자신들이 겪는 고통의 총합이 훨씬 클 것이라고 여긴다.​​​

벤담은 거지가 구걸할 수 밖에 없는 원인, 일할 수 없는 경제적 원인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행복과 고통의 관점에서 사회와 구 구성원의 행동, 그리고 정부의 역할만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벤담의 [구]빈민법 개혁안은 구체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전면 폐지보다 훨씬 가혹한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벤담은 전국에 250개의 대형 노역소를 설치해 50만 명의 빈민을 수용하고 그 운영비를 빈민의 노동으로 조달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각 노역소는 일종의 원형감옥(panopticon)과 같은 구조로 지어 최소의 인력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각 노역소는 ‘전국 자선 회사(National Charity Company)’라는 이름의 민관 합작회사를 통해 운영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아울러 벤담은 빈민들의 구호 신청을 억제하기 위해 노역소의 생활수준을 최하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시했습니다.

벤담의 이런 제안은 프랑스 혁명의 영향(혁명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영국 정당(보수, 휘그) 모두 효용을 법과 정책에 적용해야 한다고 여론에 강조했고, 결국 신빈민법(1834)의 열등처우의 원칙으로 실현되었습니다.

벤담의 공리주의 철학을 따른 사람들이 바로 영국의 동인도회사의 관리들이였습니다. 벤담의 공리주의는 영국의 제국주의 지배 논리를 제공했습니다. 물론 벤담은 식민지 국민들의 독립을 지지하기도 했지만, 벤담의 공리주의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