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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

주민참여예산제의 철학적 배경

달고양이 Friday 2023. 5. 3. 00:15

전세계에 많이 도입 운영되고 있는 주민참여예산제가 어떤 정치적 배경과 철학적 토대에서 탄생하게 되었는지 짧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주민참여예산제(Participatory Budgeting. PB)가 1989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리에서 도입되면서 전세계적으로 도입 확산되었습니다. 한 제도가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국가로 확산된 사례가 있었나 할 정도로 드문 사례입니다.

물론 국내 주민참여예산제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다고 보고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그 정치적 배경과 철학적 토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진단해 봅니다. 주민참여예산제의 철학적 본질을 이해해야 개선 방향도 도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민참여예산제가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리에서 활성되어 유명세를 따며 전세계로 확산되었는데요. 이 정도는 다 알겠지만, 좀 더 자세하게 소개하는 글이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공화주의적 사회계약론

18세기 후반 프랑사 혁명은 루소의 사회계약론(공화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은 혁명을 열렬히 지지한 여성, 가난했던 노동자와 농민을 배반했습니다. 루소는 주권은 대리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정부는 인민의지의 대리기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소수 엘리트가 공동선보다 소수의 사익을 우선시하는 행태를 방지하는데 주 목적이 있었습니다. 혁명 이후 대의제를 통해 엘리트가 권력을 독점하면서 노동자와 농민, 여성을 배반하는 정치를 이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소수 엘리트가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이용해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여성을 동원한 후 그들을 배제시켜 갔습니다. 이후 역사는 다 알고 있듯이 본연의 권리를 찾는 역사였습니다. 혁명과 더불어 주어져야 했던 권리가 주어지는 200년 이상이 소요되고 있습니다.

주민참여예산제 도입 정치적 배경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리의 주민참여예산제는 룰라가 이끄는 금속노조의 새로운 노동조합운동 'New Unionism'에서 씨앗이 뿌려졌습니다(Artigo, 2010). 브라질 노동조합은 군부독재 제체에서 우파 엘리트의 헤게모니에 대항하기 위해 전통 좌파 엘리트 정당에서 벗어나 새로운 노동운동, 즉 풀뿌리 조직에 기반한 노동조합 운동을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노동조합 운동은 크게 5가지 사회 정치운동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1) 노동조합의 권력으로부터 독립 및 합법화 운동(우파와 좌파 모두 국가 독점 노동조합 강조) 2) 대중 정당인 노동자 정당(룰라 대통령 선출) 창설 3) 직접민주주의(시행정의 기존 제도 탈피, 주민총회에 기반한 직접민주주의) 요소와 새로운 공화주의 도입(정치적으로 배제된 시민사회 영역의 참여, 공화주의에 입각한 권리), 4)주민참여예산제 도입 5) AIDS 퇴치를 위한 중앙정부의 사회정책 시행 등이 그것입니다.

브라질의 금속노조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노동조합 운동을 통해 노동자 정당이 설립되면서 전국적으로 새로운 운동 차원에서 주민참여예산제의 다양한 모형이 실험되기 시작하면서 포르투 알레그리의 주민참여예산제도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포르투 알레그리 시만 주민참여예산제가 실시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시에서 시행하고 있다는 것을 시 주민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시도하려고 했습니다.

포르투 알레그리 주민참여예산 심의 과정/ https://participedia.net/case/44

주민참여예산제는 공화주의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새로운 노동조합 운동이 모색하고 도입한 철학은 시민의 역량을 키우고 정치에 참여시키는 시민 공화주의 철학에 입각해 있습니다. 이를 형성적 공화주의라 부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포르투 알레그리에서 주민참여예산제 운영을 통해 시민사회 영역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직접 민주주의 제도 역시 공화주의 철학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브라질의 경우, 포르투 알레그리 이외의 도시에서 예산 참여 제도 실험이 시작되었습니다. 포르트 알레그리의 경우, 노동자당이 이끄는 선거 연합전선이 시장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재정이 엉망인 시를 물려 받게 되었습니다. 시 재정이 부족하다는 점을 주민총회에서 인정하고 시민에게 권한을 주겠다고 밝힙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근린단체연합(The Union of Neighborhood Associations of Porto Alegre)의 한 주민이 재정편성권을 시민에게 주라는 제안을 시장이 받아들이면서 주민참여예산제 실험이 시도되었습니다. 노동자당의 시장은 재정이 부족하더라도 자신의 권한을 당의 노선과 이성에 맞게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권한 자체를 시민에게 돌려주었던 것입니다.

포르투 알레그리의 주민참여예산제로 인해 근린 시민단체들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시민사회의 활성화는 주민참여예산제 활성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민참여예산제는 단순한 주민참여제도가 아니라 예산편성 권한을 가지고 그 결정에 권위를 부여하는 심의 민주주의 제도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야 혹은 이슈에 얼마만큼의 예산을 투입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단순히 다수결의 원리가 아니라 합의가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포르투 알레그리 시는 6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주민총회를 통해 예산 투입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예산을 편성하면 상위 주민총회에서 최종 결정하는 과정으로 권한이 분권화되는 제도가 구축되었습니다.

브리질 노동조합의 사회 정치 운동 그 자체가 공화주의 전통에 있습니다. 이런 유형은 마이클 센델이 <민주주의 불만>에서 잠시 소개했던 19세기 미국 노동기사단 활동과 유사합니다. 미국의 노동기사단은 8시간 노동제를 주창했는데, 당시로선 매우 신선한고 진보적인 주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유노동이 노동기사단의 주 목표였습니다. 이는 결국 미국의 카운티의 자치(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과도한 노동착취를 문제삼은 것이 아니라 정치 참여를 위해 선결되는 조건이라 여겼습니다. 윤석렬 정부에서 주 60시간 노동을 추진하려고 하는데 이는 노동자의 정치적 무관심을 유도하는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시민 공화주의 입장에 센델은 정치 참여를 할 수 있는 기본적 조건의 평등을 강조합니다.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정치참여와 역량을 동등하게 할 수 있는 조건말입니다. 이런 조건들을 정치가 고민해야 합니다. 주민참여예산제 개선 방향도 조건의 평등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마련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참조.

Gianpaolo Baiocchi, 2001., "Participation, Activism, and Politics: The Porto Alegre Experiment and Deliberative Democratic Theory", in Archon Fung and Erik Olin Wright (ed), Deepening Democracy.

Benjamin Goldfrank, 2007., "The Politics of Deepening Local Democracy: decentralization, Party Institutionalization, and Participation", Comparative Politics, Vol. 39, No. 2, pp. 147-168.

Artigo, 2010., "Sources of Brazil’s Counter-Hegemony", ev. Bras. Polít. Int. 53 (2), pp.12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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