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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센델의 시민 공화주의와 노동 본문

정치철학

마이클 센델의 시민 공화주의와 노동

달고양이 Friday 2023. 5. 3. 00:19

양극화가 심화될 수록 다수의 노동자들이 무시당하고 외면당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을 겁니다. 어느 순간부터 예전에 존재하던 서비스가 사라지거나, 공장의 부도로 더 이상 제품이 생산되지 않는 경우에 다소 아쉬운 마음이 생겨나곤 합니다. 내가 좋아하던 서비스와 제품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서비스와 제품을 통해 나와 생산자(노동자)의 관계가 단절되어 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관계가 유지된다면 나와 생산자가 유대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관계를 알게 된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될 것이며, 존엄성을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한국 사회, 미국 사회, 아니 지구의 모든 사회에서 시민들, 노동자들을 소비자로 기능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선거 때마다 거의 모든 후보들이 '경제성장' 기치를 내세워 왔습니다.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이런 미국 사회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길을 추종해 온 한국이 양극화와 불평등, 지역인종의 갈등으로 점철되며 미국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까요. 더이상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꿀 수 있는 사회가 아닙니다. 그리고 한국 역시 '코리안 드림'의 나라가 아닙니다.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약속하는 경제 성장과 개발 공약은 실제 몇 억대 자산가들의 행복을 충족시키기 위한 약속입니다. 유권자의 행복이 발현되거가 안해도 관계없습니다. 이런 부류의 정치인들은 소명의식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철저히 벤덤의 공리주의 논리에 포획되어 있는 부류입니다. (벤덤은 사회의 행복을 측정하려 했는데, 왕의 행복이 가장 크다고 보았습니다. 학교에서 대학에서 이 내용을 은페하고 있지만. 아니면 가르치는 사람도 모르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겠죠.)

노동에 대한 존엄이 정치의 주요한 아젠다가 되어야 합니다.

공화주의 전통의 사람들은 노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

언젠가 우리 사회는 청소 노동자들을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사회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말이죠. 따져 보면 우리가 버린 쓰레기를 줍는 사람은 의사만큼이나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가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질병이 창궐할 테니깐요. 모든 노동은 존엄합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 테니시 주 멤피스 연설에서,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p.325

헤겔은 시장이 노동자에게 기술에 대한 인정, 인간으로서의 인정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노동조합과 길드 같은 자본주의적 노동조직의 활동이 윤리적으로 정당한 조건으로 아래의 2가지 조건을 제안했습니다.

최저 임금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모든 노동 활동에 있어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p.327


노동조합이 최저임금 투쟁, 각종 사회 정치 투쟁에 나서는 윤리적 근거입니다. 노동조합이 공적 사안에 활동하는 것은 윤리적 사회적 책임입니다. 그렇게 여겨야겠죠. 한나 아렌트가 문제삼고 있듯이 임금노동만 중시하는 사회는 전체주의로 치우칠 수 있어 한나 아렌트는 정치적 삶을 강조한 것과 동일합니다. 일정 정도 한국 사회도 센델의 시민 공화주의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전체 사회가 대부분 인정하지 않는게 문제일 뿐이겠죠. 자유주의에 경도된 한국 정치가 문제입니다.

마이클 센델은 정치가 노동의 존엄을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센델은 분명 정치인들과 마이크가 큰 언론인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코로나 펜데믹에서 간호사와 의사, 청소 노동자의 중요성을 잠시나마 깨닫게 되었습니다. 센델의 미국 사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도, 미국 사회도 이런 노동의 존엄을 깊이 고민해 오지 않았습니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가치, 금융 자본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 왔고 우대해 왔습니다. 그들의 투자를 받아야 만 행복해질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필수 노동뿐만 아니라, 없을 경우 가치가 드러나는 노동은 많습니다. 이런 노동에 어느 정도의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지 논쟁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리고 평범한 노동자, 서민, 자영업자가 정치적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센델의 조건의 평등, 기회의 평등x)을 논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입니다."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비원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경비원의 일에 대한 존엄이 무시되는 사회에서 경비원과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경비원의 복지에 성금을 보내는 일도 의미있을 수 있지만, 우리 사회가 그 일에 존엄을 부여하기 위해 집합적인 기여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센델은 금융은 그 자체는 아무런 가치를 생산하지 않다고 비판합니다. 오히려 그는 금융이 자본을 사회적으로 유용한 목적(신생 기업, 공장, 도로, 공항, 학교, 병원, 가정 등등) 배당함으로써 경제 활동을 돕는 것이라만 생산적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금융의 최소한의 역할에 접근하기 쉽지 않은 것도 현실입니다. 정치는 이런 문제를 다루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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